“시도 의원의 공천권은 대한민국 국회의원에게 있고 모든 시도의원의 권력은 국회의원에 대한 줄서기로부터 시작된다.” 우스갯소리 같지만 20년 넘게 지방자치제도를 시행하고 있는 대한민국의 현주소다.
시도의원에 대한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이 총선 즈음에 출판기념회를 하는 기간이 되면 대한민국의 거의 모든 시`군의회의 시계는 멈추어버린다. 아무리 일을 열심히 하고 주민 편의와 민생을 위해 불철주야 노력을 했어도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지역위원장이나 국회의원의 눈 밖에 나면 다음 지방선거에서 시도`의원을 기약할 수가 없기 때문에 시`군 의사일정에 관계없이 행사 참석을 최우선으로 하게 된다.
이런 고질적이고 충분히 개선할 수 있는 문제에 대해 국회의원들은 절대 개선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권리라고만 생각하고 있다. 지난 지방선거를 앞두고 세가 극히 약했던 안철수 의원이 새정치연합을 만들어 무공천을 하자고 했던 이유가 다른 목적이 있었다고는 하지만 이런 병폐를 고치고자 하는 원칙도 포함되어 있었다.
공천에 목을 매달고 살아가야 하는 시도의원들에게 중앙정부와 지방정부간 사활이 걸린 중차대한 이슈가 생기면 모두 입을 함구한다. 자신의 의견은 아예 피력조차 하지 않는다. 오로지 공천권을 가지고 있는 국회의원들이 결정하면 그대로 따를 뿐이다. 누리과정 예산 문제가 좋은 예다.
지난 2015년 12월 31일 밤 12시, 경기도의회 더민주당 의원들과 새누리당 의원들은 자정을 넘기면서까지 격렬한 몸싸움을 벌였다. 누리과정 예산주체가 정부인지 아니면 지방정인지를 놓고 벌인 싸움이었다. 새누리당의 당론은 지방재원에서 누리과정 예산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었고 반대로 더민주당은 중앙정부에서 책임져야 한다는 것이었다. 누리과정 예산이 아무리 크다 한들 정부와 광역시 그리고 지방자치단체 그리고 교육청이 서로 조금씩 양보하고 타협하면 충분히 만들 수 있는 예산이었다.
실제로 합의점을 찾아보려는 노력도 있었지만 당론이라는 한 마디에 도의원들은 몸을 던져가며 충성 몸싸움의 진수를 보여줬다. 경기도의회의 의장단상은 그날 양당 의원들의 링이 됐다. 그날의 격한 몸싸움은 도민을 위한 몸싸움이 아니었다. 오직 국회의원들의 눈에 잘 보이기 위한 싸움에 불과했다.
만일 공천권이 국회의원이나 지역위원장들에게 없었다면 그날의 단상은 달랐을 것이다. 싸움이 진행되는 동안 자리를 피해있던 어느 도의원의 말처럼 충분히 합의점을 찾을 수 있는 문제이고 타협점을 찾아 정부와 협상을 벌이면 지금과 같은 어린이집 운영 중단이라는 초유의 사태는 막을 수 있었을 것이다.
완전한 지방자치는 예산독립의 문제도 있지만 정치적 독립도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지역 현안보다 당론에 밀려 어쩔 수 없이 지방자치를 포기하는 시도 의원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하는 제도적 보완이 지방자치를 더욱 탄탄하게 만들 것이다. 그리고 국회의원들이 자신들의 권리라고 생각하는 공천권을 하루라도 빨리 포기하는 것이 민주주의 헌정질서를 바로 회복하는 지름길이다.
전경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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