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브렉시트가 보여주고자 하는 데쟈뷰

보호무역주의는 세기말에 끝이 났다.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폴란드 땅에서 세르비아 청년의 총탄에 맞고 숨이 멎은 날 세계는 경악했다. 오스트리아는 즉각 세르비아에 선전 포고를 하고 전쟁에 돌입했다. 그러나 1차 대전은 단순히 오스트리아의 황태자가 죽었기 때문에 시작된 전쟁이 아니었다.

제국주의가 한창 팽창하던 시기 독일과 오스트리아에 앞서 세계 여러 나라에 식민지를 두었던 영국과 프랑스는 식민지에서 나오는 물량을 바탕으로 갈수록 힘을 키워 나갔으나 후발주자였던 독일과 오스트리아는 산업화에 성공했음에도 불구하고 더 이상 팽창할 수 없었다. 후발주자들이 생각하기에 영국과 프랑스 때문에 식민지가 부족했던 탓이었다고 판단했다. 결국 독일은 오스트리아와 동맹을 맺고 프랑스로 진격한다. 또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분전에 두려워하던 러시아는 세르비아가 같은 슬라브 민족 이라며 영국과 프랑스 편에 서서 참전을 하게 된다. 이 전쟁의 사상자는 900만에 달했다.

뜬금없는 세계1차 대전 이야기 같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지금의 브렉시트 사태와 비교해 볼 만한 것이 있기 때문이다. 세계1차 대전의 시발점은 오스트리아 황태자의 죽음이 아니라 영국의 끝없는 탐욕이 만들어 낸 비극이기도 하다. 1차 대전 발발에 앞서 영국은 자국의 이익을 위해 오스만과 동맹을 맺고 러시아와 전쟁을 하기도 했으며 반대로 러시아와 연합해 독일과 싸우기도 했다. 영국의 식민지에 대한 탐욕은 유럽 열강들을 자극 했으며 결국 전쟁으로 이어졌다.

오늘날로 돌아와서 유럽연합이 시작되고 영국의 파운드화는 브리티시 공동 통화라는 지위를 상실해갔다. 앞서 미국의 달러에 국제 기축통화를 빼앗긴 것도 모자라 유로화에도 밀려나가기 시작했다. 세계 5위라는 경제대국이자 세계금융지주라는 영국인들의 지위는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유로연합에 밀려 뒷자리를 차지하게 됐다. 이에 분노한 영국인들이 유로연합을 탈퇴하면서 옛날의 영화를 다시 살리겠다는 기치를 높이 걸었다. 그것이 브렉시트다.

그러나 영국인들이 생각하는 브렉시트는 과거와는 다르다. 과거 영국이 선점한 것을 뒤따라온 것은 독일과 오스트리아 이지만 지금은 영국의 국력을 훨씬 상회하는 나라들이 많다. 영국의 영원한 동맹 미국과 미국에 충성스런 일본을 제외하고도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있으며 영국의 뒤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나라들도 많다. 영국이 유로연합을 탈퇴하고 홀로 보호무역주의를 가동한다고 해도 세계경제는 1차 대전 당시처럼 흔들지 않을 공산이 크다. 문제는 흔들리지 않는 다자간 무역구조와 균형을 무력으로 흔들어 깰 수 있다고 생각할 수 도 있다는 문제다.

정치와 외교가 역부족일 때 최후로 선택하게 되는 무력은 세계1차 대전과 2차 대전에 나타난 양상이다. 세계 상위권에 드는 나라들이 휘두르는 무력은 상상을 초월 한다. 이미 두 번에 걸친 세기의 대결에서 인류는 그것을 충분히 경험해 알고 있다.

영국인들이 지금 무엇을 선택했는지 아직 역사가 기록할 수는 없겠지만 보호무역주의를 선택한 영국의 바람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될 경우 블록화 되어 있는 무역구조는 금이 가고 각국의 무역마찰은 늘어날 것이다. 어마어마한 부를 가진 나라들의 분쟁은 아프리카 소국들이 일으키는 분쟁과는 다르다. 세계 공멸의 분쟁으로 치달을 수도 있는 시발점이 브렉시트가 아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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