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전경만의 Human Story> 김권중 중부고고학연구소장 “문화가 없는 나라는 죽은 나라”

모래폭풍이 부는 거친 사막 한가운데 챙이 짧은 모자를 쓰고 먼지와 함께 걸어 나오는 사람이 있다. 그의 왼쪽 허리에는 긴 채찍이 둘둘 말려 있으며 오른손에는 무척 오랜 된 듯한 유물이 들려 있다. 그의 이름은 ‘인디아나 존스’다.

영화 인디아나 존스는 지난 1990년대까지 세계영화시장을 강타했던 시리즈 중의 하나다. 영화에서 인디아나 존스는 고대의 유물을 찾아 세계를 떠돌아다닌다. 덕분에 많은 사람들이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으며 그의 영향을 받아 고고학을 전공했다는 사람이 나오기까지 했다. 그러나 고고학은 영화에서처럼 멋지지만은 않다고 김권중(47세) 중부고고학 연구소 소장은 말한다.

중부고고학연구소는 동수원 사거리에 위치한 매장문화재 전문 발굴 연구소다. 문화재청이나 대학의 박물관 등에서 소화 못하는 매장문화재 발굴을 전문으로 하고 있는 중부고고학 연구소는 주로 ‘구제발굴’을 전문으로 하고 있다. ‘구제발굴’이란 대규모 토목공사나 산업단지 조성 등으로 일정규모 이상의 지역을 개발하기에 앞서 긴급하게 매장문화재를 조사해 가치 있는 유물들을 보존하는 작업을 ‘구제발굴’이라고 한다.

청동기 선사를 전공했다는 김 소장은 “구제발굴을 하는 단체는 전국에 100개 정도 있다. 주로 분포조사 발굴에 앞서 시굴조사를 많이 하고 있다. 우리 같은 단체들이 없다면 많은 문화재들이 소리 소문도 없이 사라지거나 유실되기도 한다. 그래서 반드시 우리 같은 악역이 필요하다”며 너털웃음을 짓는다.

김 소장이 말하는 악역이라는 말은 시공사나 시행사의 입장에서 보면 맞는 말이라고 한다. 또 문화재 관련종사자가 종종 듣는 말이라고 한다. 공사를 시작해야 하는데 문화재 조사가 자칫 길어지거나 중요 문화재가 출토되면 공사기간이 늦추어지기 때문이다.

경기도에 온지 7년이 됐다는 김 소장은 중부고고학 연구소가 설립될 당시 실장으로 와서 지금까지 자리에 있게 됐다고 하면서 “주로 경기도와 강원도 지방의 문화재 발굴을 한다”고 밝혔다. 김 소장이 발굴한 대표적인 문화재로는 ‘양평 대평리 고분’이 있다. 양평에서 발견된 대평리 고분은 6세기 후반에서 7세기 전반 신라의 한강진출 이후 조성된 것으로 추청 되는 고분이다.

김 소장은 “신라가 한강유역에 진출한 6세기 중반 경주지역에서 만들어진 최고급 고분과 흡사한 방식으로 보아 무덤의 주인은 신라 최상류층 이거나 지역의 대호족 무덤일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무덤길에 회칠을 하고 고분 앞쪽과 옆쪽 일부에서 발견되는 대규모 축대는 무덤의 주인이 가지고 있는 권세가 컸음을 의미한다. 무덤 내부에서는 관을 만들 때 사용된 것으로 보여 지는 철제 고리와 못이 발견됐다.”고 말했다.

이어 김 소장은 “양평 대평리 고분은 경기도에서 흔치 않는 고분이다. 원래는 3개의 고분이 발견됐어야 했는데 2개 밖에 없었다. 마을 사람들이 이 지역을 삼태봉이라고 했는데 하나가 사라졌다. 아마도 주변에 골프장이 들어서면서 사라진 것으로 보인다. 충주에 가면 여러 고분들이 고르게 분포하는데 양평에는 없었다. 최근에는 파주의 덕진산성과 아산에 있는 백제와 관련된 무덤조사를 하고 있다. 아산에서 하는 작업은 규모가 크다. 단일 구릉에서 발견되는 것 치고는 최대 규모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사실 발굴의 종류에는 두 가지가 있다. 계획 발굴과 구제발굴이다. 계획발굴은 학술발굴이라고도 한다. 학술 발굴은 국가의 자금을 받는 기관들이 계획을 세워 주변에 있는 것들을 발굴하는 것을 말한다. 그리고 우리가 하고 있는 구제발굴은 국토개발을 하는 과정에서 수반되는 발굴이기 때문에 국비지원이 없다. 구제발굴을 하면서 운영하다보니 힘든 측면이 있다. 과거에 비해 입찰이 많아 졌다. 이 분야에서도 경쟁력이 필요한 시대가 온 것이다. 중부고고학 연구소를 평가한다면 거의 A급 가까운 '트리플 B'정도 된다. 메이저로 나가는 중간과정에 있는 연구소이다. 경쟁력이 있는 편에 속한다”고 했다.

직업으로서의 고고학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하자 김 소장은 “고고학은 최근 대학가나 사회에서 진행되고 있는 인문학 통폐합의 영향을 받고 있다. 따지고 보면 고고학은 학문적으로 많은 투자가 이루어져야 가능한 직업이다. 그러나 투자대비 페이는 적은 편이다. 딱 공무원 수준이지만 공무원 같은 신분 보장이나 노후보장 같은 것들이 없는 힘든 직업이다. 반면 개인적으로는 매력적인 일이다. 단순히 직업 이상의 마인드가 있어야 고고학 관련 일을 할 수 있다. 일종의 운명이라고 생각하고 열심히 하면 생활에 쪼들리지는 않는다, 그래도 누구에게 권장하고픈 직업은 아니다”고 밝혔다.

또한 김 소장은 “고고학은 우리의 문화재를 조사한다는 자부심과 자긍심이 생긴다. 문화재를 바라보면 흥분되고 기대감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정신적인 만족감이 높은 직종이다. 성취감을 느끼기 시작하면 이 직업에서 손을 떼기 힘들다. 또 오래된 문화재를 보고 있으면 신비롭기까지 한다”고 말했다.

인터뷰 말미 김 소장은 “최근 고고학이라고 하면 생소하고 일반시민들이 보는 시각들이 좀 부정적인 부분이 있다. 개인재산 침해나 공사지연 등 과도한 비용을 받는다는 오해들이 있다. 그러나 조금 불편하고 느려지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자랑스러운 문화재를 찾아내는 일인 만큼 이해를 가지고 봐주시길 바란다. 문화가 없는 나라는 죽은 나라다. 관심을 가져 주셨으면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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