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명나라의 여러 황제 중에 가장 유명한 황제를 꼽으라면 3대인 영락제일 것이다. 주원장의 넷째 아들이었던 영락제는 ‘연왕’이라는 칭호를 얻어 지금의 북경을 지배했었던 패자이었다. 그러나 조카인 건문제가 황권을 강화하지 못하고 신하들에게 휘둘리자 반란을 일으킨다. 요즘말로 하면 쿠데타이다. 영락제의 군대는 과거 1500년간 중국인들이 자신들의 수도라고 여겼던 남경을 쳐들어가 쿠데타를 성공시켰다.

남경을 쳐들어간 영락제의 군대는 황체의 친위대를 격파하고 건문제의 수하들을 즉참한다. 그리고 수도를 지금의 북경으로 옮겨 그곳에 자금성이라는 세계 최고의 성을 건설하고 제국을 지배했다. 그 뒤로도 영락제는 정복 사업을 펼쳐 지금의 내몽고 까지 국경을 넓혀 명의 위세를 과시했다. 그러나 쿠데타로 황권을 거머쥔 영락제의 걱정은 내치가 아니고 외부세력에 의한 명의 멸망이었다. 그래서 영락제는 여진이나 거란족들이 다시 일어서지 못하도록 철저하게 정복했으며 그들이 뭉치지 못하도록 각종 법률을 정비했다.

그러나 외세침략에 의해 나라가 망할 것이라는 영락제의 걱정은 기우였다. 명나라의 멸망은 여진의 후예들이 세운 청나라에 의한 것이 아니고 황실의 부패와 환관들의 횡령 및 착취에 의해 국가의 기강이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명나라의 마지막 황제 숭정제는 휘하에 훌륭한 무관을 두었으나 그를 믿지 못하고 오히려 환관의 말을 믿었다. 황제의 총애를 등에 업은 환관들은 궁을 지키는 병사들의 급여조차 주지 않았다.

이에 이자성을 중심으로 한 군인들과 농민들이 합세해 농민반란을 일으켜 자금성을 점령해 버린다. 신하들은 도망치고 북에서는 청나라 군인들이 명나라에 무혈입성을 했다. 황제는 끝내 자살을 함으로써 생을 마감한다. 청나라 군대는 손에 피 한 방울 묻히지 않고 자금성에 입성해 북경이 자신들의 땅임을 선포한다. 청나라의 시작이다.

나라가 망하려면 이렇게 쉽게 망한다. 한나라, 진나라, 당나라, 송나라 그리고 명나라로 이어진 한족(漢族)들의 마지막 국가 명나라는 허무하게 무너지고 중국은 지금까지 오랑캐들이 지배하는 세상이 됐다.

청나라 건국 후에도 한족들은 ‘반청명복’이라는 한족 중심사상을 이어 오기는 했으나 백성들은 명나라 건국을 마음속에 두지 않았다. 부패한 나라의 관리 밑에서 사는 것보다는 이민족의 지배를 받더라도 착취와 수탈이 적은 나라에서 살기를 원했기 때문이다. 청나라 건국 후 끊임없이 일어났던 명나라 장수들의 반란들을 진압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명나라 장수들과 한족 의용군에 의한 것이 더 많았다.

부정과 부패가 만연한 사회가 백성들에게 주는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다. 전란 보다 더 무서운 것이 관리들의 부패라고 할 정도 이었다. 우리나라도 크게 다르지 않다, 부정하고 부패한 세력들이 자신들만의 권력을 유지하려고 궤변을 늘어놓으며 백성들을 착취하는 세계관을 당연히 여기는 구조를 법률적으로 자꾸 용인하게 되면 나라는 생각보다 쉽게 망한다. 명나라가 그랬던 것처럼 말이다. 돌이켜 보면 조선도 이와 비슷하게 망했다. 정권을 유지하겠다고 일본군을 끌어 들여 농민을 학살했던 조선정부는 당연히 망해도 싼 정부였다. 그런 정부는 백성들에게 민폐만 끼칠 뿐이었다.

국민이 정부를 선택할 수 있다면 어떤 정부가 선택 당할 것인지 집권자들은 늘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늘 자신이 국민들로부터 외면을 받고 있는 정부의 구성원인지 아닌지 생각해보고 정권의 편에 설 것인지 아니면 백성들의 편에 설 것인지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오늘을 살아가는 관료들의 올바른 태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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