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전기세 때문에 만들어진 전기불가촉천민(電氣不可觸賤民)


오랜 계급사회를 유지해왔던 인도와 한국에서 형식적으로나마 신분제가 사라진 것은 불과 100여년 전이다. 부모의 신분에 의해 자녀의 신분과 지위가 전해지는 조선의 신분제는 일본에 의해서라고 하지만 지난 1894년 갑오개혁을 통해 형식상 사라졌다. 그러나 한국의 뿌리 깊은 차별의식과 신분제가 사라졌다고 보는 사람은 드물다.

한국인의 뿌리 깊은 차별의식은 신라시대에서부터 있었다. 지배층이라고 할지라도 진골과 성골 그리고 육두품으로 나뉘었으며 고려에 와서는 귀족과 천민간의 신분차이가 엄격했다. 그리고 조선에 이르러서는 유교를 바탕으로 한 사농공상(士農工商)이라는 뚜렷한 계급이 만들어졌으며 조선정부는 이를 매우 중요한 사회질서로 여겼다.

일제강점기에 들어서는 새로운 계급들이 탄생한다. 조선을 팔아 신흥 귀족이 된 무리들과 발 빠르게 자본주의를 배운 사람들이 자본에 의한 계급을 만들어 냈다. 이런 전통은 지금까지 이어져 요즈음은 자본에 의한 계급과 국회의원을 포함한 고위관료계급 그리고 지방선거를 통해 신흥 호족세력으로 등장한 지방선거계급이 사회지배층으로 등장했다.

그리고 신분제가 엄격했던 과거에서나 지금이나 꼭 등장하는 계급이 하나 더 있다. 바로 불가촉천민계급이다. 불가촉천민(不可觸賤民)이란 말 그대로 접촉하기조차 꺼려지는 계급이다. 인도 카스트제도에 등장하는 불가촉천민이 인도에만 있는 것은 아니었다. 한국의 사회질서적 계급이었던 사농공상 밖에 있었던 대다수의 사람들은 한국의 불가촉천민이었다. 도자기를 굽거나 신발을 만들거나, 도축을 하는 사람들 등이 여기에 해당됐었다.

그들은 사농공상의 범위 밖에 있었기 때문에 노비보다 천한 대접을 받아왔다. 인간적인 사회제도 안에서 제대로 보호받지 못했던 그들에 대한 천대는 현대화가 되면서 사라졌지만 불가촉천민 자체는 사라지지 않았다. 오늘날 한국의 불가촉천민은 사회 곳곳에 넘쳐난다. 사회보장혜택밖에 있는 사람들과 안에 있다고 해도 사회제도 자체가 도움이 되지 못하고 오히려 거추장스러운 사람들이 여기에 해당 된다.

최근에는 전기불가촉천민이라는 말도 생겨났다. 날씨가 아무리 더워도, 폭염이 쏟아지거나 말거나 선풍기이외에는 더위를 식혀줄만한 도구를 사용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전기불가촉천민이라고 한다. 전기 누진세가 무서워 더운 여름을 몸으로 버텨야 하는 사람들에 대한 자기비하적 언어다.

전기세가 아무리 높다하나 사람이 먼저라는 생각조차 못하게 만드는 전기불가촉천민을 위한 정부의 대책이 늦어지는 이유가 자신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전기세 때문일 수도 있지만 접촉조차 꺼린다는 불가촉천민에 대한 뿌리 깊은 선민의식이 있었던 것은 아닌지 되돌아봐야 할 때다. 다 함께 같이의 가치를 공유하며 살자 제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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