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등록금을 벌기 위해 스폰서 남자와 사귀는 사회문제에 대해 미국이 크게 동요하고 있지만 자본주의 사회에서 스폰서 남자를 처벌할 법적 근거가 없다는 것이 최근 미국이 처한 사회적 문제이다. 미국뿐만 아니라 미국식 자본주의를 도입한 일본과 우리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자본주의 국가에서 자본의 규모가 사회적 신분과 계급을 만든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자본의 규모가 크면 클수록 더 많은 권력을 쥘 수 있는 문제는 생각보다 심각한 사회적 문제다. 인류의 도덕관념을 뛰어 넘어 자본의 횡포가 인간의 기본적인 것들을 제한할 수도 있다는 사회구조에 대해 더 이상 방치하면 안 된다는 신호가 곳곳에서 감지되고 있다.

먼저 자본이 더 많은 자본을 만들기 위해 만들어 놓은 비정규직의 문제는 국가의 정체성마저 흔들고 있다. 자본주의 정부는 국민을 정규직 국민과 비정규직 국민으로 나누고 같은 일을 해도 정규직은 더 많은 돈을 받고 승진과 퇴직이 보장되어 있다. 그러나 비정규직은 정규직에 비해 터무니없이 적은 규모의 봉급과 해마다 승진 없이 반복되는 계약 만료와 재계약 그리고 계약 해지만이 존재 한다. 그리고 자본주의 정부는 정규직 국민과 비정규직 국민과의 소득 및 사회보장 차별을 법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또한 자본주의 정부에서의 매춘은 더 이상 불법이 아니거나 혹은 사문화 된 법이 되고 있다. 멀리 미국에 까지 갈 것 없이 한국 재벌의 매춘은 처벌의 대상이 아니며 재벌의 불법은 언제나 집행유예와 가깝다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날 자본주의 국가의 기준이 되고 있는 미국에서 조차 성매매는 불법이 아닌 사회 현상으로 넘어갈 만큼 자본의 힘은 인류가 만들어 온 도덕적 가치를 무너뜨리고 있다.

앞으로 자본은 어떤 형태로 바뀔지 모른다. 그런데 지금의 형태처럼 자본이 도덕이나 법위에서 그 경계를 넘나들면서 확실한 하나의 계급 수단으로 정착될 경우 자본주의는 생각 밖으로 쉽게 무너질 수 있다. 자본의 위험에 대해 경고 했던 ‘칼 막스’가 지하에서 웃는 현상이 사회 곳곳에서 구조적으로 발견되고 있는 지금 이에 대한 즉각적이고 영구적인 처방과 보안이 필요하다.

막스가 주장한 계급투쟁이 멈춘 것은 대량생산과 대량소비가 시회 전반을 지배하면서 평등에 대한 인간적인 욕구가 잠시 멈추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대량생산은 있으나 대량소비가 일부 자본계급과 정규직에만 한정되고 인간의 성처럼 사고 팔 수 없는 물건들이 자본에 의해 매매가 일상화 되는 사회현상은 결국 계급투쟁을 불러올 수 있다. 계급투쟁이 불러올 미래는 처절하고 잔인하다는 것을 모르지 않는 사람들이 저소득 아파트 단지 주민들과는 같은 땅에서 살수 없다는 주장이 넘쳐 나는 한국의 미래는 공멸에 가깝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성을 사고 팔 수 있고 돈만 있으면 누구나 종을 부릴 수 있으며 돈이 있기 때문에 더 많이 배울 수 있는 사회구조를 정부가 바꾸려 하지 않고 오히려 기업의 최대 이윤 창출을 위해 정부가 앞장서서 나서고 있는 지금의 한국은 지극히 위협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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