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개혁군주 정조는 서학 즉 천주교에 대해 묵인을 했다. 정조가 천주교에 대해 묵인한 것은 천주교를 통해 새로운 문명을 배우는 한편 서학 스스로가 조선에서의 한계성을 드러내 크게 확장되지 않을 것임을 믿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1800년 정조가 이른 나이에 세상을 떠나자 서학을 통해 실사구시를 이루고자 했던 당대의 실학파들이 대거 실각을 하게 된다. 그 대표적인 사람이 바로 다산 정약용이다. 조선 후기의 실학자 다산 정약용은 개혁을 통해 조선을 바꾸겠다는 의도보다는 기존의 상태에서 불합리한 제도를 바꾸어보고자 노력했던 사람이었다.

그의 실각이 기정사실화 된 사건을 대외적으로는 신유박해라고 한다. 당시 정조 사후 11살에 불과 했던 순조를 위해 수렴첨정에 나섰던 영조의 계비 정순왕후가 정권을 잡으면서 천주교는 본격적인 탄압을 받게 된다. 정순왕후는 스스로를 여주(女主) 또는 여군(女君)이라 칭하면서 섭정을 했다.

정순왕후가 섭정을 하는 동안 정약용의 맏형은 사약을 받았으며 정약용 스스로도 유배의 길에 올랐다. 실학의 거두들이 유배되거나 사망하면서 조선후기는 걷잡을 수 없는 소용돌이에 빠지게 된다. 시대의 흐름을 읽어내지 못했던 조선의 집권세력은 결국 붕당과 부패에 빠져 삼정을 문란하게 만들었다. 삼정문란의 시작이 바로 정순왕후의 섭정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이다.

정순왕후의 섭정과 최근에 실체가 드러나고 있는 순실왕후의 섭정은 비슷한 면이 많다. 순조의 뒤에 서서 4년간 국정을 농단한 정순왕후와 대통령의 그늘에 숨어서 4년간 국정을 농단한 순실왕후는 나라 전체를 혼란하게 만들었다. 통일을 향해 달려가던 남과 북은 극한의 대치를 이루었으며 서둘러 내부정리를 해야 했던 누리과정 같은 문제는 대통령의 임기가 끝나가는 지금까지 해결된 것이 없다. 순조시대와 순실 섭정시대에는 무엇하나 마무리되는 일이 없이 일이 끝났다. 시작은 있으나 마무리 되지 않는 국가사업이 늘어날수록 국력은 낭비되고 국론은 분열됐다. 조선은 그렇게 망해갔다.

정순왕후의 최후는 정조의 친위세력들에 의해 끝이 나면서 또 다른 비극을 불러일으켰다. 보수 집단의 몰락이다. 정순왕후의 보복과 뒤이은 정조 친위세력들의 물고 물리는 보복은 조선후기를 이끌어갈 인재들을 대거 죽이면서 마무리됐다. 인재들을 죽여 버린 조선은 밀려드는 서구의 사상을 해석조차 시도하지 못했다. 인재가 죽으면 나라가 망한다는 진실이 증명된 것이다.

지금 걱정되는 것은 순실왕후의 섭정 몰락 이후다. 그리고 다가올 정치 후폭풍이다. 과거처럼 보복에 또 다시 보복이 이어지면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인재들이 나라를 버리면 어찌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물론 순실왕후의 불법적인 섭정에 대해 엄단해야 할 것이 있다면 엄단하여야겠지만 그것이 정치 보복으로 이어지거나 인재 참살로 이어지면 안 된다는 것이다.

보수의 가치와 진보의 가치는 앞으로 나아가기 위해 반드시 부딪치며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는 것은 국가발전에 꼭 필요한 것들이다. 누구 하나의 국정 농단 때문에 보수나 진보를 대표하는 사람들이 다치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 다만 순실왕후가 국정 농단을 주도하면서 이를 알면서 도왔거나 묵인했던 사람들에 대한 처벌은 대한민국에서 적용가능 한 가장 엄한 법의 잣대로 처벌해야만 일벌백계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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