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을 들고 광장에 선다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광장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의 속설 중에 하나는 두려움이다. 열린 광장에 홀로 선다는 것 자체가 굉장한 용기를 필요로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자유롭기를 원하지만 광장가기를 주저 한다. 그런데 12일 서울 광화문은 혼자만의 광장이 아닌 백만의 광장이었다.
백만의 사람들이 모여 한 목소리로 박근혜 퇴진을 외쳤다. 목소리엔 두려움이 없었다. 국민 99%보다 더 높고, 더 많은 것을 소유한 박근혜와 그의 일당들에 대한 두려움 없이 국민들은 “이제 그만 끝내자”라며 대통령의 하야를 요구했다.
이번 박근혜 하야 요구 사태는 많은 것을 담고 있다. 지난 10여 년간 쌓여왔던 수백 수천가지의 응어리들이 한 번에 폭발하듯 거리로 쏟아져 나온 것이다. 외국자본으로부터 국민을 지켜주지 못하는 정부, 대기업이 국민을 비정규직으로 채용해 노예 부리듯 착취를 해도 모른 척 하는 정부, 국민보다 대기업 편에 서서 노동법을 개악하려 했던 정부, 304명의 학생들을 못 구한 것인지 안 구한 것인지 해명조차 안하는 정부 등 그간 쌓여서 넘쳐났던 문제들이 한꺼번에 쏟아지면서 광화문은 순식간에 100만의 인파가 모였다.
이데올로기 시대의 최인훈은 광장을 통해 망가지고 버려지며 중압에 눌려 남과 북을 모두 버리고 제3국을 선택했다. 최인훈의 ‘이명준’은 대한민국을 광장에서, 마음속에서 가슴속에서 영원히 삭제해버렸다. 그러나 11일 광화문 광장에 모인 사람들은 대한민국을 버리지 않고 영원히 대한민국에서 대한민국과 함께 살고자 했던 사람들이다. 그리고 함께 가고 싶어도 광장에 오지 못했던 사람들은 두 주먹을 불끈 쥐고 광장에 나선 사람들에게 박수를 치고 있다.
대한민국이 지금에 이르기까지 겪어야만 했던 수많은 좌절과 공포 그리고 그것을 통해 이룩한 부정한 수많은 부의 파편들이 이리저리 날아다니면서 대한민국 국민을 압사하게 만들었지만 국민들은 결코 주저앉지 않았다. 언제나 일어서고 또 일어섰다. 4.19를 통해 민주주의를 다시 시작하자고 했다. 5.18를 통해 군사독재는 정치일선에서 물러나야 함을 엄중하게 경고했다. 그리고 6`10 민주항쟁을 통해 지금의 우리가 태어났다. 지금은 11`12를 기점으로 한국은 다시 태어나고자 몸부림을 치고 있다.
앞으로는 분명히 달라져야 한다. 11월12일을 기준으로 역사는 12일 이전의 역사와 12일 이후의 역사로 나누어 기록해야 한다. 무엇을 잘못했는지조차 깨우치지 못하는 정권에 대해 거대한 일침을 가한 12일의 함성으로 한국은 다시 바로서야 한다. 부패가 없는 나라, 법 앞에 평등한 나라. 기회 균등의 나라, 차별이 없는 나라, 모든 권력이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이 증명되는 나라로 거듭 태어나야 한다.
그것이 12일 아들과 딸의 손을 잡고 거리로 나온 시민들이 원하는 것이다. 시민들이 광장에서 원한 것은 특정 정치집단을 위한 행동이 아니고, 특정 기업을 망가뜨리기 위함도 아니다. 지금 한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비정상적 현상을 끊어내고 새 시대로 함께 나아가고자 함이다. 아이들과 함께 광장으로 들어선 부모들은 아이들에게 역사의 현장을 보여주고자 함께 했다고 말한다.
전경만 기자
다른 기사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