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삼국사기에 보면 백제의 제21대 개로왕은 고구려 군에 잡혀 도성이 함락되기 직전에 “백성은 쇠잔하고 군대는 약하니, 비록 위급한 일이 있어도 누가 나를 위해 기꺼이 싸우려 하겠는가.”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국민의 신망을 잃어버린 왕의 최후는 비참했다. 한성에서 포로로 잡힌 개로왕은 한때는 자신의 수하였던 이들에게 참수를 당한다.

개로왕의 실패에 대해 여러 가지 설이 있지만 무엇보다 내치의 실패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설이 많다. 무리한 왕권강화와 이를 위한 화려한 궁궐 축조로 인해 백성들로부터 민심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한 군왕이 여염집 여자를 탐해 국력을 낭비한 것과 고구려의 첩자 승려 도림이 바둑을 통해 왕의 관심을 국방에서 멀어지게 한 것도 한 원인이었을 것이다.

개로왕이 단지 고구려 역사 이래 현명했다고 알려진 장수왕과의 전투에서 졌기 때문에 한수이북을 모조리 빼앗기고 웅진으로 철수한 것은 아니다. 고구려 장수왕은 치밀한 전쟁을 한 사람으로 유명하다. 백제에 대한 응징을 하기 위해 4년을 고심하고 준비한 끝에 남침을 한 것이다. 장수왕이 남침을 준비하는 동안 개로왕은 집권자로서 백성들에게 무리한 요구를 많이 했다. 비록 개로왕이 장수왕의 남침에 대비하기 위해 위나라는 물론 신라와도 동맹을 맺는 등의 준비를 했다고는 하지만 내치가 무너진 상황에서는 아무것도 막을 수가 없었다. 백제의 한성시대는 고구려 군 침입 7일 만에 끝이 났다. 그만큼 내치는 중요하다.

내치가 외치보다 중요하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 속에서만 나오는 것이 아니다.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도 내치의 실패에서 나온 결과다. 박근혜 대통령은 관저에서 출근을 하지 않고 정치를 외부인에게 맡겼다. 그리고 300여명이 넘는 어린 생명들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는 시간에 행정부의 수반이 머리를 올리고 나서 잠시 상황실을 둘러보고 난 후 어떤 지시도 없이 다시 관저로 돌아가 침거하는 동안 어린 생명들은 차가운 바다 속으로 가라앉았다. 그 어떤 변명도 시간을 되돌릴 수는 없다.

박근혜 대통령이 내치를 하지 않았던 정황들은 언론을 통해 속속들이 밝혀지고 있다. 세계보건당국이 우려한 메르스 사태가 중동지역이 아닌 한국에서 발생했을 때 “낙타를 조심하라”는 말도 안되는 정부입장을 발표했을 때 우리는 정부 수장의 내치에 대해 의문을 던졌어야 했다.

개성공단을 중단시키는 과정에 있어서도 경제부, 통일부, 외교부의 장관들이 머리를 맞대고 토론 끝에 결정을 내린 것이 아니고 아무런 사전준비나 예방조치 없이 개성공단가동을 전면중단하겠다는 발표를 했을 때 이미 이 정부가 제정신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뿐만 아니다.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한다고 하면서 “혼이 비정상”이라는 말을 했을 때 대통령이 정상적인 사고를 가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어야 했다. 세계 무역대국 20위 안에 드는 나라가 갑자기 역사교과서를 국정화 한다고 발표하자 우리뿐만 아니라 전세계 다른 나라들도 모두 놀라움을 표시하며 의문을 던졌을 때 대통령의 국정수행 능력에 의문을 표시했어야 했다.

국정에 대한 철학이나 남북관계에 대한 비전조차 없는 사람들이 매주 일요일 청와대 관저에 모여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면서 많은 이해할 수 없는 사건들이 펼쳐질 때마다 국민들은 아우성을 쳤고 그것이 결국은 수백남의 촛불이 됐다. 그리고 그 촛불에 의해 대통령의 업무는 정지 됐다. 늦었지만 다행스러운 일이다. 지금이라도 잘못된 국가행정은 바로잡고 잘못된 행정 때문에 고통 받고 있는 국민이 있다면 구제하는 것이 옳다. 그것이 국가의 기능이다. 그리고 이를 행함에 있어 정치적 색은 배제하고 오로지 국민만 바라보고 실행에 옮겨야 한다. 개로왕은 내치를 잘못해 국토를 상실했지만 우리는 아직 거기까지는 아니다. 다시 힘을 모으고 지혜를 모으면 일어설 수 있다는 것을 광화문의 촛불이 증명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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