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우리 아들은 제 나이 서른이 넘어 얻은 소중한 아이입니다. 처음 아이를 갖는다는 것은 모든 부모가 그러하겠지만 설레면서도 걱정을 앞서게 합니다. 주사 하나를 놓을 때도 이 주사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앞서고 모든 환경이 아이에게 해가 되지 않을 까 걱정을 하게 만듭니다.

그런데 태어나서 백일이 조금 지나 아이에게 큰 병이 생겼습니다. 뇌에 바이러스가 침투해 열이 난다는 의사의 진단을 받고 신촌에 있는 종합병원으로 아이를 입원시켰으나 병원에서는 아동전문병원으로 옮겨야 한다고 했습니다. 서울역 뒤편에 있는 소파아동전문병원이었습니다.

아이를 맡은 병원 관계자는 첫날부터 우리를 겁나게 했습니다. “종합검진이 나와 봐야 알겠지만 뇌에 이상이 있는 것 같으니 결과를 두고 봐야 합니다.”라며 아내와 저를 공포에 떨게 했습니다. 아이는 그날 중환지실에 들어갔습니다. 격리치료실이라 아이의 얼굴조차 제대로 볼 수 없었습니다. 하루 30분 동안, 그것도 유리창 밖에서 아이의 얼굴을 보는 것이 전부 이었습니다.

다음날, 하루 종일 전전긍긍하던 아내는 일찍 감치 병원을 찾아 면회를 신청 했으나 아이의 얼굴은 점심 이후에나 가능하다고 해서 대기실에서 하루 종일 아이 얼굴을 보고자 기다리곤 했습니다.

입원 후 첫 면회, 아이의 얼굴에는 여러 개의 주사바늘이 꼽혀 있었습니다. 얼굴은 주사로 인해서 인지 상당히 커보였습니다. 아내의 얼굴에서는 눈물이 쉼 없이 흘렀습니다. 보고 있는 저도 눈가에 눈물이 고여 감출수가 없었습니다. 집안 어른들과 처가댁에서 문병을 오겠다고 했는데, 문병을 와도 아이의 얼굴을 볼 수가 없으니 오지 마시라고 알려드린 후, 아내를 데리고 겨우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장사 때문에 가게로 나와 봐야 하지만 가게 문을 연다고 장사가 제대로 될 리 만무했습니다. 밤마다 부모가 안아주기 전까지 잠을 자지 않고 칭얼대던 녀석이 보이자 않자 집에는 냉기가 돌았습니다. 양가의 장남, 장녀가 만나 결혼을 해서 인지 유독 장난감이 많았던 아이의 방을 아내가 혼자 치우곤 했습니다. 그렇게 며칠이 지나 다행스럽게 아이는 퇴원을 했습니다.

일주일 입원해 있는 동안 아이는 변해있었습니다. 밤에 울지도 않고 떼쓰지도 않는 아이로 바뀌어 있었습니다. 병원에 있는 동안 울어도 소용없다는 것을 알았는지 커다란 머리에 큰 눈만 껌벅였습니다.

집안은 다시 활기가 돌았습니다. 분유병을 소독하고, 기저귀를 준비하며 시간이 흘러갔습니다. 두 돌이 안돼서 아이는 대화가 가능해 졌습니다. 아이가 병원에 갔다 온 후 천재가 됐는지 이해력이 늘어난 듯 했습니다. 퇴근 후에 돌아와서 아이에게 “배가 어때요”라고 물으면 “빵빵”하다고 대답해주고, 온 집안을 돌아다니며 “파, 무, 꽃”등 한 단어로 이루어진 사물을 가리키며 말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온 가족들이 놀라워했습니다. 가족들은 대단한 인재 났다며 즐거워했습니다. 곧이어 아이는 두 단어 및 세 단어를 하기 시작해 자신의 의사를 표현했습니다.

아이는 자라서 악동이 됐습니다. 놀이터 미끄럼 거꾸로 타기, 하늘다리 손 놓고 다니기, 냉장고 문잡고 타잔놀이 등, 보기만 해도 아찔한 놀이를 하는 통해 우리는 물론 아이를 보고 있는 가족들을 놀라게 했습니다.

어느날 아이가 처가댁에 놀러갔다가 미끄럼틀을 거꾸로 타고 내려오다 모래에 얼굴이 뭍혀 이마에 구멍이 생긴 적이 있었습니다. 이마 한 복판에 돌이 박혔다가 빠진 겁니다. 돌이 빠진 이마에서는 피가 뿜어져 나왔습니다. 혼비백산 하신 장모님은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에 가셨습니다. 3바늘에 걸쳐 이마를 봉합하고 돌아오는 길에 장모님은 “우리집 애기들도 대단하지만 우리 아이들도 참 대단하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

아들이 조금 커서 어린이집에 다닐 때 쯤 집에서 전화가 와서 가보니 아이가 병원에서 또 이마를 봉합하고 있었습니다. 손에 돈을 쥐고 있던 것을 뺏으려고 비행청소년들이 우리 아이를 때리고 도망갔다는 설명을 듣고 너무도 화가 난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경찰은 빼앗긴 돈의 금액이 너무 작아서인지 흐지부지 사건을 마무리했지만 아직도 그때의 화는 풀리지 않았습니다.

아내는 늘 말합니다. 키우는 즐거움, 바라만 보고 있어도 아이는 우리에게 줄만큼 다 줬다고 합니다. 그러나 학교에서 말썽도 많이 일으켜 선생님에게 전화가 오면 아이가 또 무슨 말썽을 피웠나 걱정이 앞서는 시기도 있었습니다. 아이는 수원에서 중학교를 무사히 마치고 고등학교 진학했습니다. 공부! 학교성적은 훌륭하다고 말하기에는 많이 모자라지만 오락을 잘합니다. 핸드폰 사용법도 저보다 더 잘 알아서 제가 배우곤 합니다. 가끔은 동생과 컴퓨터 때문에 싸움을 하고는 하지만 늘 옆에 있어 좋은 아들이 우리시대의 경쟁력을 따라갈 수 있을 지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 그런 아들이 지난 달 고3의 신분으로 공무원시험에 응시해 합격을 했습니다. 지난 12월 5일 최종합격자 통보를 받았습니다. 즐겁고, 행복하고, 감사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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