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자는 의미로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살면서 안보의 개념은 만들어졌다. 가족의 안보에서 씨족으로 그리고 부족으로 이어져 국가로 발전했다. 그래서 국가는 안보 공동체이자 생활공동체이다.

그리고 국가를 움직이는 정부는 여러 가지 형태가 있다. 국가라라는 개념의 주권형태인 정부는 국민의 뜻에 따라 민주정부 또는 사회주의 정부가 들어설 수 있다. 한국은 이중 민주정부를 선택했다. 민주정부를 간혹 다수결에 의한 정부라고 믿는 이들도 있으나 민주정부는 국민의 다양성을 존중하며 다양성이 가지고 있는 운동에너지의 격발에 의해 국가는 앞으로 나가게 된다.

한국은 민주정부 국가이자 가장 다양한 에너지를 만들어낼 수 있는 많은 극적인 요소들을 지닌 매력적인 국가다. 짧은 시간 안에 이룩한 산업화와 국민교육은 전 세계가 깜짝 놀랄만한 감동적인 드라마이었다. 긴 식민지 생활과 1차 대전 규모의 남북전쟁을 딛고 세계에서 가장 안전하게 번영한 나라 중의 하나가 됐다. 그러나 빠름이 가지고 온 많은 느린 것들의 보완도 함께 요구되고 있는 것이 지금의 한국이다.

느림에 속하는 것들을 보면 빈부의 격차, 노동시간, 최소임금, 학벌과 사농공상의 서열 등 많은 것들이 있다. 이런 문제는 주로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생존의 개념에 관계된 것들이 많다. 지나치게 빠르게 앞으로 나아가다보니 노친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런 문제를 온 국민이 다 걱정하지는 않는다. 왜냐하면 우리는 우리 스스로를 믿기 때문이다.

몽골 대제국의 침략을 막아낸 것도 국민이며 임진왜란과 일본 식민지를 끝낸 것도 우리 국민이다. 큰 시련을 겪으면서 한국인은 늘 성장을 거듭해왔다. 남북전쟁이라는 민족의 대전쟁 속에서도 한국인은 성장해 왔다. 지금 한국이 겪고 있는 시련도 사실 따지고 보면 큰 시련은 아니다. 충분히 극복할 수 있는 시련 중의 하나다.

87년 민주화 이후 다시는 없을 것 같았던 대통령 탄핵과 구속 이라는 시련은 우리가 극복해야 할 하나의 과제 불과하다. 다만 대통령 탄핵과 관련해 정치권이 시련극복에 앞서 국민에게 무엇을 보여줄지는 관건이다. 조선 광해군 때 정치권은 시련을 극복하지 못해 병자호란이라는 더 큰 재앙을 끌고 들어온 전례가 있다. 지금의 정치권은 과거와 같은 우를 범해서는 아니 된다는 말이다.

또한 정치권은 작금의 혼란스러운 상황에서 국민에게 불확실성을 빨리 종결지을 수 있는 대안과 희망을 보여야 한다. 대통령 선거 자체에만 매달린 결과를 두 눈으로 보고서도 당파에만 매달리는 정치권은 앞으로 사라져야 한다.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에 다양한 목소리가 분출되고 그 다양성을 담아 정치를 하는 것은 옳은 일이지만 이것을 혼란으로 이끄는 일은 하지 말아야 한다.

대한제국이후 한국인이 보여준 저력은 세계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했으나 정치권은 그런 훌륭한 국민을 자양분 삼아 성장하지 못했다. 비폭력으로 정권교체를 하는 이 시점에 있어 정치권은 불확실성을 제거하고 누구나 예측 가능한 정치행보를 보여주어야만 한다. 그것이 위대한 국민에게 보내는 정치권의 반성이 담긴 선물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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