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험난한 투표길'... 사진은 100m가량 언덕길이 있어 투표소 변경이 필요한 것으로 지적된 영화동 제5 투표구(영복여중 1층)

[연합뉴스] “비좁고, 접근 힘들고…” 수원 투표소 절반 '인권침해' 요소



100여m 이상 걸어 올라가야 하는 가파른 언덕길, 남녀 공동의 비좁은 화장실, 투표하기에 턱없이 비좁은 공간.

수원의 6·13지방선거 예비 투표소의 절반가량이 유권자의 참정권 행사에 지장을 줄 만큼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수원시인권센터는 '수원시 인권 기본조례'에 따라 지난 2∼3월 관내 306개 투표소 예정장소를 대상으로 '투표소 인권영향평가'를 했다.

전체 투표소 예정장소를 대상으로 1차 서면평가를 하고 나서 민·관 합동 인권영향평가단(20명)을 꾸려 2차 실사평가를 진행했다.

투표소 접근성과 이용 편의성, 건물 주출입구 경사로, 출입문·이동통로 통과 유효 폭, 승강기 설치 여부 등 노약자, 노인, 임신부 등 사회적 약자들이 제대로 투표를 할 수 있는 여건을 갖췄는지를 살폈다.

평가결과 유권자의 투표권을 행사하는 데 있어 심각한 인권침해 요소가 발견됐다고 수원시인권센터가 5일 밝혔다.

전체 306개 투표소 가운데 146개소(47.7%)에서 주요 점검사항 중 한 가지 이상 문제점이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주요 문제점으로는 투표소 출입구 장애요인 존재 70곳, 장애인 화장실 미설치 68곳, 임시경사로 설치 필요 57곳, 투표소 주변 급경사 22곳 등이다.

투표소 변경이 필요할 정도로 심각한 곳도 정자1동 제3 투표구(동신아파트 2단지 경로당 1층), 영화동 제5 투표구(영복여중 1층), 매탄4동 제2 투표구(백자아파트 관리동 주민 쉼터 1층) 등 3곳으로 조사됐다.

동신아파트 2단지 경로당 1층 투표소의 경우 아파트 단지 내부에 있어 접근성이 좋은 장점이 있지만 기표대, 참관인석, 투표함 등을 설치하기에는 공간 자체가 부족하고 출입구도 매우 비좁다.

투표소 설치 면적에 대한 기준은 명확하지 않지만, 경기도 선거관리위원회는 동시 지방선거의 경우 투표소 한 곳당 최소 20평(66.1㎡) 이상을 확보한다는 방침을 세워놓고 있다.

영화동 제5 투표구로 예정된 영복여중은 학교 정문에서 투표소까지 8도가량 경사가 진 100여m의 언덕길을 걸어 올라가야 해 장애인에게는 상당한 제약으로 작용할 것으로 지적됐다.

매탄4동 제2 투표구로 쓰일 백자아파트 관리동 주민쉼터 1층에는 장애인 화장실은 아예 없고, 남녀공용의 일반 화장실도 입구 폭이 64㎝, 화장실 칸 폭이 54㎝로 좁아 일반인의 이용도 불편해 투표소 변경이 필요하다는 평가가 나왔다.

수원시인권센터는 부적합 투표소 3곳에 대해 대체투표소를 마련하고, 평가에서 지적된 사항을 개선하도록 읍면동 선관위에 권고할 예정이다.

또 문제가 있는 투표소가 선거 때마다 재선정되는 관행을 고치기 위해 시 차원의 개선책을 마련하도록 수원시에도 권고하기로 했다.

투표소는 공직선거법에 따라 읍면동 선거관리위원회가 선거일 전일까지 관할 구역 안의 투표구마다 설치해야 한다.

학교, 읍면동사무소 등 관공서, 공공기관·단체의 사무소, 주민회관 등 선거인이 투표하기 편리한 곳에 설치하게 되어 있지만, 적합한 투표소 구하기는 쉽지 않다.

선관위가 학교 등 관공서는 10만원, 민간시설은 30만원의 투표소 임차료를 지급하고 있으나, 투표소 설치에 따른 불편함과 낮은 임차료 때문에 민간시설은 투표소로 제공하기를 꺼린다.

이런 제약 요인으로 인해 지역 사정에 밝은 동 주민센터 공무원이 예전부터 투표소로 이용해 오고, 민원 발생이 비교적 적은 곳을 골라 추천하면 해당 읍면동 선관위가 투표소로 결정하는 관행이 이어지고 있다.

그러다 보니 인권영향평가에서 지적된 문제가 있는 투표소가 선거 때마다 투표소로 계속 이용되는 게 현실이다.

수원시의 한 공무원은 "요즘에는 투표소로 선뜻 쓰라고 내놓는 곳이 없어 투표소 확보하기가 엄청나게 힘들어졌다"면서 "그래서 일부 투표소는 너무 좁아 유권자들끼리 동선이 겹치기도 한다. 다른 장소로 바꾸고 싶어도 마땅한 곳을 찾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경기도선관위도 투표소 선정에 어려움을 토로하고 있다.

도 선관위 관계자는 "투표소가 바뀌면 시민들이 항의하기 때문에 가급적 예전에 선정한 곳을 투표소로 이용하고 있다"면서 "일부 투표소는 내부공간이 변경되면서 투표하기 어렵게 변하기도 하는데, 이럴 경우 다른 투표소를 구하기가 무척 힘들어진다"고 말했다.

도 선관위는 이번 지방선거에 총 3천78개 투표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수원시인권센터 박동일 시민인권보호관은 "투표소 구하기가 쉽지는 않지만,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인권침해 요소가 적은 곳을 선정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면서 "투표소 선정 공무원의 인식개선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양질의 투표소를 설치하려면 임차료를 현실화할 필요가 있다"면서 "유권자인 시민의 선거참여를 확대하기 위해 시예산에서 임차료를 일부 지원하는 방안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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