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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해저터널, 굳게 닫힌 양국 경제관계 타개할 열쇠
   
▲ 한일해저터널 계획안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경인종합일보 윤상명 기자] 한일해저터널, 굳게 닫힌 양국 경제관계 타개할 열쇠


지난 7월 일본은 반도체 등 각종 산업 핵심소재에 대한 한국 수출규제와 수출절차에 대해 간소화를 제공하던 ‘화이트리스트’국가에서 한국을 배제하며 경제전쟁을 시작한 것에 대해 한달 후 한국은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 ‘지소미아’파기를 선언하며 양국이 심각한 갈등을 겪고 있는 상황이다.

과거 위안부, 강제징용 등 역사문제부터 시작해 독도 영유권 분쟁으로 이어지던 양국의 갈등이 이번 수출규제로 일본이 먼저 칼을 뽑았다. 이에 한국이 WTO(세계무역기구) 제소에 이은 국민들의 자발적 일본 보이콧에 이어 군사협정 파기라는 강경대응으로 맞서 갈등이 장기적 국면으로 접어들 것이라는 우려도 낳고 있다.

하지만 양국은 지리적으로 최인접국이며 동북아시아에서의 위상 등을 고려할 때 이런 갈등의 장기화는 양국 모두에게 좋지 않으며 이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것은 그 피해를 국민들에게 모두 전가하는 것이다. 짚을건 짚고 넘어가되 무조건적인 배척과 대립보다는 외교와 대화를 통한 합의점 모색이 현명한 대응이라는 것은 한·일 양국 지식인 이하 다수의 국민들도 동감하고 있는 상황이다.

이 시점에서 지난 1981년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발표된 한일해저터널이 양국 관계 개선의 열쇠가 될 것이라는 의견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1981년 제10차 국제과학통일회의에서 문 총재가 처음으로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에 대해 공식 선언했다.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 한일해저터널,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ICUS에서 제창

1981년 11월 10일,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서울에서 개최된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전 세계 노벨 수상자를 비롯해 각 분야의 학자들 총 720명이 참석한 가운데 “중국에서 한국을 통하여 일본에 이르는 아시아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고 전 세계로 통하는 자유권 대평화고속도로를 건설하는 것이다. 중국대륙에서 한반도를 종단하여 터널이나 혹은 철교로 일본열도에 연결하고 일본을 종단하는 자유를 보장받는 국제평화고속도로권을 말하는 것이다. 만일 이것이 건설된다면 아시아 3국은 문자 그대로 평화고속도로로 연결되어 일체화될 수 있다”며 ‘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을 공식적으로 처음 발표했다.

국제하이웨이는 동북아 국가 간 사람, 물건, 자본, 서비스의 자유로운 이동시대를 열어서 경제공동체 구축을 통해 평화와 안전을 이루자는 취지로 출발했다. 그 일환으로 ‘한일해저터널’ 프로젝트는 문선명·한학자 총재 비전에 따라 1982년 4월 일본에서 국제하이웨이건설사업단이 발족됐고, 1983년 5월 일본 북해도대학 사사 야스오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일한터널연구회’가 설립됐다. 그해 7월에는 일본 규슈(九州) 사가현 가라쓰(唐津)와 이키(壹岐), 대마도의 육상부와 해역부 조사를 개시했다. 그리고 1986년 10월 사가현 진제이초 나고야에서 제1차 조사를 위한 파일럿 터널공사를 시작했다. 일본 측은 지상과 해양, 항공지형 조사를 실시했으며, 터널구간을 따라 환경역학조사도 병행했다. 그리고 가라쓰에서 한일터널 탐사를 위한 굴착공사를 진행했다. 현재 바다 밑으로 547m까지 굴착한 상태이며 현재도 지질조사가 계속되고 있다. 한국에서도 1986년 ‘한일해저터널연구회’를 설립한 뒤 1988년 10월 거제도 일대 5개 지역에서 시추조사를 벌였다.

기술적 문제는 큰 문제가 없다는 것이 양국 기술진의 공통된 의견이다. 일본의 해저터널 건설 기술은 1964년 세이칸해저터널을 뚫을 때부터 확보돼 세계 최고 수준이라고 볼 수 있다. 1986년 영불해저터널 착공 때도 일본 측 인사가 기술고문으로 참여했다. 한일해저터널은 해저구간만 150㎞에 달하고, 가장 깊은 곳은 수심이 최대 220m에 이르는 점을 고려할 때 지금까지 개발된 해저터널 굴착 공법이 모두 동원될 예정이다.

1990년 5월 노태우 대통령이 한일해저터널의 필요성을 언급한 이후 김대중(1999년 9월), 노무현(2003년 2월) 대통령도 해저터널에 관해 긍정적 의사를 표명했다. 이명박 정부 시절도 해저터널은 검토해볼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국정감사에서 해저터널 타당성 여부를 묻는 한나라당 김정권 의원(경남 김해갑)의 질문에 정정길 전 대통령실장은 “한일해저터널에 대한 예비타당성 조사를 할 용의가 있고 적극 검토하겠다”고 답변하기도 했다.

 

한일해저터널 완성예상도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일본 정부는 2000년 모리 요시로(森喜郞) 당시 일본 총리가 아시아·유럽정상회의(ASEM) 참석차 방한한 자리에서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공식 제의한 바도 있으며, 또 2003년 일본 자민당은 한일해저터널 건설을 100년 동안 이뤄야 할 3대 국가과제로 선정하기도 했다.

문선명·한학자 총재는 2008년 1월 18일 국토해양부에 공익법인인 세계평화터널재단을 등록했다. 동 재단은 각계 인사들을 규합, 한일터널과 베링해협 프로젝트의 실현을 위한 추진체로 ‘베링해협 평화포럼’과 ‘한일터널 포럼’을 발족시키고, 학술연구와 홍보 등 다양한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다수의 사람들이 한일해저터널은 남북관계 개선효과도 있다고 보고 있다. 중국횡단철도(TCR), 시베리아횡단철도(TSR)와의 연계를 고려하면 북한 개방과 협력도 앞당길 것이다.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추진하는 세계평화를 위한 국제평화고속도로의 일환인 한일해저터널은 한일 간에 도로 교통망을 건설이라는 차원을 뛰어넘어 남북통일과 동북아시대의 새로운 질서 개편이 비전을 제시한다는 차원에서 주목을 받고 있다.

역사적인 한일관계를 극복하고 양국 간에 사랑의 가교를 잇는 평화 터널이 건설되면 진정한 평화가 기대된다. 한국과 일본이 결속하면 태평양의 도서국가제국군의 협력도 예상된다. 그 때 문제가 되는 것은 국경·인종·민족·사상 등의 대립이다. 그 벽을 넘어 평화적인 관계가 되도록 이끌어야 한다. 도버해협의 영불터널은 영국과 프랑스 양국의 정상회담에서 합의되어 4년 후에 관통했다. 영국과 프랑스의 터널이 관통한 직후 유럽연합(EU)이 탄생했다. EU의 탄생으로 무비자로 왕래가 가능하게 되었다. 통화도 유로화로 통합 되었다.

마찬가지로 한일터널이 관통하게 되면 동아시아 공동체와 아시아 공동체 형성 가능성이 현실화될 수 있다. 나아가 공통 통화도 탄생될 것이다. 동아시아 공동체 만으로도 세계 제일의 경제권이 되고, 아시아 전체가 되면 더 큰 경제권이 될 것이며, 이러한 혜택은 세계로 확장해 나갈 것이다.

 

한학자 총재 터널 시찰 기념 테이프 커팅(2016년 11월 14일)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 한학자 총재, 한일해저터널 기공 30주년 기념행사 참석

2016년 11월 14일 일본 사가현 가라쓰시에 위치한 한일해저터널 현장에서 동북아 평화를 위한 한일해저터널 기공 30주년 기념행사를 가졌다. 1981년 11월 10일에 문선명·한학자 총재가 제10회 국제과학통일회의(ICUS)에서 ‘국제하이웨이·한일터널 구상’ 발표한 이후 1986년 11월 10일 사가현 가라쓰에서 개최한 한일해저터널 기공식의 30주년을 기념한 것이다.

이날 행사는 한학자 총재 축도, 기념 테이프 커팅, 터널 시찰, 전망대 관망, 기념식수 등이 진행됐으며, 한일해저터널 현장을 첫 방문한 한학자 총재를 비롯해 200여명의 한일 관계자 대표들이 참석했다. 한학자 총재는 축도에서 “역사적으로 한국과 일본은 부모의 나라로 인류 앞에 책임을 다해야 한다”며, “한일해저터널을 통해 오늘날 전 세계에서 나타나는 암담한 현실을 희망으로 바꾸어 나가야 한다”고 하면서 앞으로 한일해저터널을 적극 추진해나갈 것을 강조했다.

 

일본 사가현 가라쯔에 위치한 한일해저터널 조사 사갱 현장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한편 한일해저터널의 첫 시발점이 됐던 가라쓰 조사사갱은 상정 루트의 조사활동과 병행하여 사가현 진제이쵸(鎮西町, 현 가라쓰시)에서는 조사사갱 건설이 시작됐으며 1986년 10월에 가라쓰에서 기공식이 거행되어 높이 5.5m, 폭 6m의 조사사갱 굴삭이 본격적으로 시작됐다. 이후 사갱굴삭 계획은 제4기(610-810m), 제5기(810-1010m), 제6기(1010-1210m)로서 사갱 길이1200m, 총예산 40억엔으로 예정되어 있다.

이후 해저터널의 재개를 알리는 대마도 조사사갱은 2014년 5월, 대마도 서해안의 아레(阿連) 사갱 갱구 공사가 시작되어 상세측량이 실시됐다. 사갱은 가라쓰와 같이 4분의 1구배(4m 나아가면 1m내리는 각도), 지름 약 6m로 1,300m까지 굴삭하고 그 사갱 밑바닥에서 수평갱(선진도갱)을 1,700m 굴삭할 예정이다. 마침 그 위치가 대마도의 서수도(西水道)·대단층의 대마도측 최첨단에 해당하는데 거기서 1,000m 수평 보링을 하여 퇴적해 있는 미고결층의 코어를 회수 및 분석하여 신규 퇴적층 강도를 확인하는 계획이다.

윤상명 기자  gnews.rc@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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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학자 총재 터널 시찰 기념촬영(지하 600m 지점) /세계평화통일가정연합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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