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14일 ‘경기도민의 가족다양성 인식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경기도여성가족재단 제공)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이 14일 ‘경기도민의 가족다양성 인식과 향후 과제’를 주제로 토론회를 개최했다.(사진=경기도여성가족재단 제공)

[경기= 신선영 기자]

1인가구, 미혼한부모가족, 공동체가족 등 가족의 체계와 구조가 빠르게 변화하는 가운데 정부가 ‘가족다양성 존중’을 주요 정책 과제로 제시했지만 여전히 다양한 구성의 가족들이 사회적 편견과 정책 사각지대에 노출되고 있다. 

경기도여성가족재단은 양성평등주간을 맞아 14일 ‘경기도민의 가족다양성 인식과 향후 과제’라는 주제로 토론회를 열고 가족다양성에 대한 논의를 이어갔다. 

어떤 형태의 가족이든 가족구성으로 인해 차별받지 않고 안정적인 삶을 영위하려면 먼저 가족에 대한 인식이 바뀌어야 하고, 정책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건 국민의 목소리라는 점에서 이같은 논의테이블은 매우 중요하다. 

가족구성 다양성에 대한 인식은 각 개인의 상황에 따라 더 적응적인 가족구조를 선택할 수 있는 폭을 넓힐 수 있으며, 다양한 가족이 함께 살아가기 위한 공감대를 조성해 안정적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대책을 마련하기 위한 자리다.

 

(왼쪽부터)최효정 경기도 가족다문화정책팀장, 전영순 경기한부모회 대표, 윤성은 구리시가족센터장, 유화정 가족구성원 연구소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사진=경기도여성가족재단)
(왼쪽부터)최효정 경기도 가족다문화정책팀장, 전영순 경기한부모회 대표, 윤성은 구리시가족센터장, 유화정 가족구성원 연구소 연구위원이 토론자로 참석했다.(사진=경기도여성가족재단)

■ 가족다양성 인식조사…경기도 가족정책 기초자료 마련

결혼과 출산, 부양 등을 기피, 가족과 같이 사는 삶을 포기하면서 1인 가구가 폭증하는 등 가족 유형이 다양화함에도 우리 사회는 여전히 ‘가족’을 ‘초혼핵가족’에 가둔 채 정상가족 이데올로기에 빠져있는 상황이다. 

재단은 이같은 사회변화에 대응하는 경기도 가족정책의 기초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지난 5월 11~23일, 도민 2천53명을 대상으로 다양한 가족에 대한 인식조사와 실태 연구에 나섰다. 

이번 인식조사는 도농 복합도시 특성을 반영해 도시‧도농‧농촌 권역으로 나눠 조사 후 분석했다. 특히 다양한 가족의 실제적 삶을 구체적인 질문으로 구성, 20가지 가족 유형을 제시해 설문 참여만으로도 가족의 의미가 확장되는 계기를 마련하는 등 유의미한 결과를 도출했다는 평가다. 

조사 결과 참여자들 대다수가 ‘부부와 그들이 낳은 아이’(97.4%), ‘3살 아이와 한부모’(95.5%) 등 혼인·혈연관계를 가족으로 인정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정자은행을 통하여 출산한 아들과 사는 미혼여성’(83%), ‘남편 사망 후 애완견을 키우며 사는 84세 할머니’(50.1%), ‘각자 자신들이 낳은 아이들과 사는 동성커플’(49.4%), ‘자녀가 없는 동성커플’(34.4%) 등 가족 인식 수치는 가족 가치관이 ‘혼인·혈연 중심’에서 ‘생계주거공동체 또는 친밀한 관계’로 확대되고 있음을 반영한다. 

 

▲토론회 참여자들
▲토론회 참여자들

■ 현실변화 못 미치는 법제도 정비 ‘시급’

이번 조사에서 경기도민 76.5%가 ‘생활동반자법’을 지지하는 것으로 나타나면서 가족법 등 제도적 한계도 주요 의제로 떠올랐다. 

유화정 가족구성권연구소 연구위원은 “생활동반자법(동반자 등록제)은 전통적·법적 가족 가치관에 기반한 편견 속 사회·제도상 고립에 놓인 비전통 가구들이 제도적 안전망을 갖게 되며, 정당한 시민의 권리를 누릴 수 있게 한다”며 “개인이 가족을 자신이 원하는 방식으로 구성할 권리를 보장할 수 있도록 가족다양성을 넘어 가족구성권을 논의할 시점”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가족 유형 다양화’라는 담론을 수행해야 하는 현장의 딜레마를 아우를 향후 과제도 논의됐다. 

윤성은 구리시가족센터장은 “가족다양성수용증진 사업이라는 이름으로 센터에 요청되는 사업은 종사자들에게 다문화이해교육, 가족다양성수용증진 교육, 가족친화교육 등 다름과 같음의 경계에서 고민이 크다”면서 “군에서 특례시까지 포진돼 급진적이며 보수적인 양면성을 가진 경기도의 특성을 기반으로 광역단위의 가족다양성 문화확산을 일관성있게 이끌어가야 한다”며 도의 역할을 요청했다.

전영순 경기한부모회 대표는 “저출산 극복 중심의 가족정책 패러다임에서 벗어나 가족 내부의 평등을 위한 실질적 변화를 지원하는 기본법 제정 및 사회적 가족 등 실질적인 돌봄과 친밀성을 실천하는 다양한 관계를 지원하는 정책이 마련돼야 한다”면서 현실과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는 법제도 정비의 시급성을 피력했다. 

 

▲이나련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이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이나련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이 본지 기자와 인터뷰를 하고 있다.

 

[인터뷰] 이나련 경기도여성가족재단 연구위원

Q. 1인 가구가 폭증하고 가족 가치관이 바뀌면서 가족해체 우려가 크다. 

IMF 때 이혼율이 높아지면서 가족 와해, 가족해체라는 용어가 대두됐으나 가족학자 입장에서는 지양하는 단어다. 이혼은 부부관계의 해체일뿐 가족의 해체가 아니며, 1인 가구도 원가족이 있으니 가족해체라고 보기 어렵다. 

초기 부모기 전환 연구에서도 출산을 부부관계의 위기라고 했던 적이 있다. 아이가 태어나는 것은 ‘위기’가 아닌 ‘전이(과도기)’다. 역할 변화로 적응하느라 어려움이 찾아온 것이며, 위기가족이 아니라 또 하나의 전환을 겪는 것이다.

1인 가구 증가는 단순히 비혼뿐 아니라 직장, 학업 등 개인적 요인이 작용한다. 산업화로 인해 확대가족에서 핵가족으로 변화하듯 정보화시대에는 사회·문화적 맥락이 변화하면서 결혼과 출산, 개별화 욕구 등 삶을 대하는 태도가 급격히 바뀌었다. 그러나 가족이 없어지는 게 아니라 다양한 형태로 변화하면서 ‘가족들(families)’이 되는 것이다.

Q. 전문가들은 비혼출산, 동성커플 가족, 공동체가족 등 다양한 현상들을 가족에서 벗어나려는 탈가족이 아닌 새로운 방식의 ‘가족 재구성’이라 말한다. 어떤 의미인가

초혼핵가족이라는 기존 이데올로기를 벗어나려는 시도를 ‘탈가족’이 아닌 어떤 형태이든 가족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수용성의 개념이다. 재구성 보다는 가족구성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것에 초점을 맞췄으면 한다. 

Q. 이번 가족다양성 인식조사에 심혈을 기울인 것으로 안다. 시사점과 의의는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실시하는 조사에 어떤 척도를 사용할 것인가 고민이 많았다. 자칫 문항을 그룹화함으로써 획일화되는 우려를 범하지 않으려 20개 유형으로 개별화했다. 

도민 인식 수준이 매우 높다는 데 의미가 크다. ‘누구와 어떻게 살든 내가 원하는 사람과 살고 싶다’는 것은 옳다/그르다, 정상/비정상 개념이 아닌 본인의 선택에 의해 가족이 만들어지는 것이며 어떤 형태든 그들이 좋아서 살고 있다면 가족으로 생각한다는 이 같은 수치들은 다양성의 폭이 넓어졌다는 것을 시사한다. 

Q. 인식 변화에도 여전히 살아있는 규범 ‘가족신화’가 뿌리깊다. 어떤 노력이 필요한가

농촌지역이 도시에 비해 다문화수용성이 높다. 예를 들어 옆집 베트남며느리를 보면서 자연스럽게 내 삶으로 녹아드는 것처럼 일상의 노출이 인식변화를 이끈다. 자주 만나면 부정적 인식이 사라진다.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 덕분에 장애인에 대한 편견이 줄어들었듯 대중문화에서 다양한 가족에 대해서도 그냥 가족유형의 하나로 바라볼 필요가 있다. 

우린 언제까지나 초혼핵가족으로 살아갈 수 없다. 생애주기 중 언젠가는 다양한 유형의 가족이 될 수 있다. 아니 초혼핵가족일지라도 다양한 가족 중 하나임을 인식하고 편견과 차별을 좁혀가는 노력을 해야 한다.

Q. 다양한 가족에 차별적 인식을 강화하는 건 제도다. 다양성과 선택을 존중하면서 제도적 지원의 접점을 어떻게 마련해야하나 

가족정책의 한계는 대상을 명확히 해야 하는 지원정책에서 비롯된다. 가족으로서의 권리가 없는 구성원들은 주택정책, 사회보장제도 속에서 어려움에 부딪힌다. 병원과 학교에서도 행정절차로 인해 혼인증명서 등으로 정상가족을 구분하고, 그 과정에서 문제 있는 가족으로 낙인감과 고립감을 경험하게 된다. 

공무원과 교사 등 공적 영역의 인식 제고를 통해 다양한 방식의 정책적 상상력을 키워야 한다. 

‘반려동물과 같이 사는 1인 가족’이 ‘AI와 같이 사는 1인 가족’으로 확장되는 등 앞으로는 상상하지 못했던 다양한 유형이 나타나게 될 것이기에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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