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경인종합일보 김형천 기자] 허니열풍 거센데 꿀벌산업은 위기…품종개발 박차

지난해 허니버터칩 등장 이후 '허니' 열풍은 과자에 이어 술, 치킨, 라면, 화장품 등 유통업계 전반으로 퍼졌다. 올해에도 허니열풍은 여전하지만 정작 꿀벌산업은 위기에 처했다. 기후변화로 벌꿀 생산환경이 열악해졌으며, 지난해 12월 타결된 한-베트남 FTA로 벌꿀시장이 처음으로 개방되는 등 대외적 위협요인은 증가하고 있다.

벌꿀시장 개방은 단순히 벌꿀 생산농가의 소득감소로 끝나지 않는다. 국내산 꿀이 가격경쟁력을 잃고 소비가 줄어 양봉을 포기하는 농가가 속출할 경우 생태계 보전이 위협받는 상황을 초래할 수 있다.

이명렬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농업연구관은 "전세계 100대 농작물 중 71%가 꿀벌에 수분을 의존하고 있으며, 꿀벌이 농작물 수분에 기여하는 경제적 가치는 우리나라에서만 약 6조원으로 평가된다"며 "생태계보전이라는 공익적 가치가 꿀벌에 있다"고 말했다. 일반상대성이론을 내놓은 아인슈타인이 "꿀벌이 지구에서 사라지면 4년 안에 인류도 사라진다"고 예언한 이유이기도 하다.

국내는 물론 해외에서도 꿀벌이 살아가는 환경은 갈수록 나빠지고 있다. 국내에 사는 꿀벌은 아까시나무에서 70% 가까이 꿀을 따오는데 최근 이상기온으로 한반도 남부지방과 중부지방의 아까시나무 개화시기가 30일에서 15일로 줄었다. 아까시 꽃이 동시에 피면서 꿀을 채취하는 게 어려워졌고, 꿀벌에게 꿀을 제공하던 다른 밀원, 즉 메밀과 참깨, 유채꽃의 재배면적도 줄고 있다.

국내에서는 미국처럼 꿀벌이 원인모를 이유로 갑자기 없어지는 '봉군붕괴증상'은 없지만, 2010년 '낭충봉아부패병'이라는 바이러스에 토종벌이 감염돼 75% 이상이 폐사하는 피해가 발생했다. 벌초를 하던 노인이 말벌에 쏘여 사망했다는 소식이 최근 추석 전후로 나오고 있을 만큼 등검은말벌의 등장도 위협적이다. 외래 침입종인 등검은말벌은 2003년 부산 영도에서 처음 발견된 뒤 토종벌과 양봉 꿀벌을 먹어치우는 거대 포식자로 생태계를 교란하고 있다.


벌통이 놓여진 인근의 아카시아 꽃에서 꿀을 모아 집으로 운반하는 꿀벌들의 모습 5월 초순은 자연산 아카시아 벌꿀이 집중적으로 생산되는 시기이다.

◇ 우리나라 '고구려'때 인도로부터 동양종 꿀벌 도입…국내 꿀벌규모 200만통

우리나라는 고구려의 동명성왕때 인도로부터 중국을 거쳐 동양종 꿀벌이 도입된 것이 시초라고 '삼국사기'에 기록돼 있다. 근대적 의미의 꿀벌 사육은 독일계 구걸근 신부가 1910년대 일본을 통해 봉군 수십 통을 도입해 보급한 것이 시초다. 현재 국내 꿀벌의 규모는 200만통 정도로 토종벌 약 30만통, 서양종 꿀벌 약 170만통으로 구성돼 있다.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세계 꿀벌 통 수는 6500만통이며, 꿀 생산량은 151만톤으로 집계되고 있다. 꿀 생산량은 아시아가 약 64만톤으로 가장 많으며, 이 가운데 중국의 꿀 생산량이 약 36만톤으로 절반을 차지한다. 중국은 꿀벌 통 수와 꿀 생산량 모두 세계 1위다. 우리나라 꿀벌사육 규모는 세계 11위이며, 벌꿀 생산은 2만7000 톤으로 세계 15위를 기록하고 있다.

국토 면적 대비 꿀벌의 밀도는 높은 편이나, 상대적으로 밀원식물이 부족해 벌통 당 꿀 생산량은 낮은 편이다. 우리나라 벌통 1개당 꿀 생산량은 16.8kg으로 세계평균(23kg)에 크게 미치지 못한다. 베트남(31.5kg)과 비교하면 절반 수준이다.

이를 해결하고자 농촌진흥청은 지난 3월 꿀 수집 능력이 기존 꿀벌보다 30% 이상 뛰어난 '장원벌' 개발에 성공했다. 2013년 예천곤충연구소와 공동 연구를 통해 개발한 장원벌은 벌통 1개당 22kg 생산이 가능하며, 번식력이 왕성해 벌통당 일벌의 수도 기존 양봉 꿀벌에 비해 45% 가량 많다.

농촌진흥청은 이번에 개발된 장원벌을 정부장려품종으로 지정하고, 올해부터 3년간 총 3만여마리를 생산해 20여 농가에게 시범적으로 보급할 계획이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잠사양봉소재과 박사는 "장원벌이 보급되면 생산량이 연간 6300톤(약 700억원) 더 늘어날 것"이라며 "꿀 수입 개방에 따른 국내 벌꿀 시장의 위기에 대응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 벌꿀산업 전통적 영역 '꿀' 생산 너머 기능성성분 활용한 제품 출시로 확대

벌꿀산업은 전통적 영역인 꿀 생산을 넘어, 밀원식물의 다양화, 기능성 성분을 활용한 제품 출시로 확대되고 있다. 세계 각국은 생산, 유통, 가공기술 등의 차별화를 통해 다양한 벌꿀 제품을 출시하고 있으며 명품화 경쟁도 치열하다. 뉴질랜드는 'UMF2'라는 항균성분을 함유하고 있는 마누카꿀을 특화해 세계적 명품으로 육성하고 있으며, 이스라엘의 허브 꿀은 120g이 8만원에 판매되며 유명인이 주요 고객이다.

꿀벌이 꽃에서 수집한 화분에는 단백질, 유지방, 각종 비타민과 미네랄 등이 풍부하며, 일벌이 분비하는 로열젤리는 암세포 성장을 억제하는 것으로 알려진 10-HDA 성분이 함유돼있다. 프로폴리스는 벌이 나무나 수액으로부터 수집한 물질과 벌의 타액선에서 나온 효소가 섞여 만들어지는 천연 항생물질로 항균, 항염, 면역 증강, 항산화 작용 등을 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국내 벌꿀산업은 벌꿀과 화분 관련 제품 시장의 성장이 둔화되며 수출에 비해 수입이 압도적으로 많다. 이를 극복하고자 농촌진흥청은 프로폴리스를 활용해 채소의 신선도를 유지하면서 저장 기간을 늘릴 수 있는 기술을 최근 개발하는 등 부가가치를 높일 수 있는 기술개발에 나섰다. 꿀벌의 침에서 채취한 봉독을 이용한 여드름 치료제도 개발에 착수했다.

농촌진흥청은 식품의약품안전처에서 여드름 치료제(HBV-DS-1401)에 대한 국내 임상 승인을 받아 최근 대구가톨릭대학교병원에서 임상시험을 시작했다. 2005년 봉독채집장치, 2007년 봉독정제기술, 2010년 봉독화장품을 개발한 데 이어 여드름 치료제 상용화를 위한 마무리 작업에 들어간 것이다.

최용수 농촌진흥청 국립농업과학원 잠사양봉소재과 연구사는 "기존에 질병저항성 꿀벌 품종 육종과 더불어 이 다양한 생산물의 생산성을 높일 수 있는 다수확 품종 개발 연구에 박차를 가할 계획"이라며 "꿀벌 사육농가의 사육기반을 확립해 농가소득 향상은 물론 대국민 먹거리 다양화와 생태계 보존 등 1석 3조의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김형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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