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박근혜 대통령이 하야해야 하는 이유가 100가지도 넘지만 특히 하야해야 하는 이유는 한국이 글로벌 세계 체제에 가입한 지 오래됐기 때문이기도 하다. 19세기 까지만 해도 국왕을 대신하는 사람들이 외국과 각종 협약을 체결했다. 이런 관행은 20세기 초반까지도 이어졌다. 그러나 문명의 발전과 함께 다양한 현안들이 쏟아져 나오자 나라를 대표하는 수장들이 모이는 자리가 점차 많아졌다. 그리고 각국의 수장들이 직접 만나 문제를 해결하는 다자주의가 지금 지구를 지배하고 있다.

문제는 박근혜 대통령이 권력을 총리에게 내어주고 외치와 안보를 담당하는 이원집정부제에서 외국의 수장들이 내적 실권이 없는 박근혜 대통령을 수장으로 인정할 것인가의 문제가 발생한다. 당장 이산화탄소 규제 강화를 위한 G20가 열린다고 하면 외국의 수장들이 박근혜 대통령이 하는 말을 신뢰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다. 이산화탄소 규제는 외적인 문제이지만 내적인 결정이 있어야 가능하기 때문이다. 외교란 결국 내적인 문제를 외부로 표출하는 정무적 관계일 때가 많기 때문에 내적 실권이 없는 대통령을 외교적으로 인정하기 어려운 부분이 있다.

안보 문제 또한 상황은 비슷하다. 남북한과 대치 중인 상황과 전시작전권도 없는 한국에서 주한미군의 일방적 발표에 대해 내적 동의 없는 미군의 주장을 신뢰하기는 어렵다. 지난 주말 미군 측에서 일방적으로 발표한 사드포대 확대 배치 문제만 보아도 사정을 쉽게 알 수 있다. 사드 포대의 확대와 인원규모는 우리와 반드시 상의하고 한국 정부가 승인을 한 다음에 발표하는 것이 원칙이지만 정국이 혼란한 틈을 타 미국은 일방적으로 사드 포대 확대 배치를 발표했다. 정부 관료들의 대규모 실각에서 오는 공백이라고 보기에는 좀 우려스러운 부분이다. 또한 사드포대배치는 전시작전권과 하등의 관계가 없는 우리가 결정할 국가 중대사이다. 그런데 미군이 일방적으로 결정한 사안에 대해 박근혜 정부는 단 한마디 언급조차 하지 못했다.

안보를 박근혜 정부에게 맡길 수 없는 가장 큰 이유는 북한 문제도 있지만 일본과 맺어가고 있는 군사정보 공유문제와 중국과의 군사협력 문제도 있다. 이런 문제를 내적 권한이 없는 사람에게 맡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며 총리가 대통령에게 내적 결정에 대한 업무지시를 내리는 모양새 또한 좋지 않다.
외교와 안보상의 실익에 대한 문제를 고려해 봤을 때 총리중심의 이원집정부제는 결국 박근혜 정부에게 면죄부를 주는 것과 같으며 국민의 뜻과 같지도 않다. 국민의 뜻이 대통령의 퇴진이면 그 뜻을 정치권이 따라 주어야 하는 것이 더 정당하다. 국민의 뜻에 반해 편법으로 총리의 권한을 강화하고 대통령의 권한을 외교 안보로 한정할 경우 국정공백의 규모만 커질 뿐이며 정치주도권을 둘러싼 논쟁이 정쟁으로 비화돼 정말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식물정부가 되어 버릴 가능성도 높다. 물론 지금도 식물정부이지만 말이다.

가장 좋은 방법은 정치가 국민의 뜻에 응답하는 것이다. 박근혜 정권을 퇴진 시키고 가장 빠른 시간 안에 새로운 정부를 구성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각 정당들은 대통령이 급작스럽게 하야를 결정하게 되면 국정공백이 생기며 두 달 안에 새로운 대통령을 선출해야 하는 문제 때문에 정국이 혼란스러울 것이라고 국민을 겁박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은 건국이후 지금까지 수많은 어려움을 겪으며 성장해 왔다. 대통령 공백으로 정치권이야 혼란스럽겠지만 일선에 있는 공무원들과 국민들은 지금이 더 혼란스럽다. 그리고 누구 하나 없다고 흔들릴 나라도 아니다. 나라가 흔들리는 것은 박근혜-최순실로 이어지는 정치마피아들이 국정을 농단할 때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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