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전경만 기자]


둘째 아들은 이른바 밀레니엄 베이비이었다. 둘째는 20세기가 저물어가는 2000년 11월19일 태어났다. 원래 0이라는 숫자의 개념은 아무것도 없는 무의개념, 신의 숫자이기 때문에 실제로 2000년은 20세기의 마지막 일 년 이었지만 사람들은 2000년 1월1일부터 새로운 밀레니엄시대가 도래했다며 야단법석을 떨었다. 그래서 둘째는 본인 의사와는 관계없이 밀레니엄베이비가 됐다.

돌이켜보면 사람들이 난리법석을 피우는 이유를 알 것 같다. 사람들의 역사 전체를 살펴 보건데 기원후 1900년간 일어났던 변화나 사건보다 지난 100년간 사람들에게 더 큰 변화와 사건들이 있었다. 인류가 인류를 상대로 벌인 학살과도 같은 전쟁이었던 2차 세계대전 그리고 앞서 일어났던 인류최초의 집단 사상전인 1차 대전과 스페인 내전 그리고 한국인에게는 돌이킬 수 없는 상처를 남긴 남북전쟁이 모두 20세기에 일어났다. 대부분의 전쟁들이 19세기 발생한 인과의 결과이기는 했지만 20세기에 발생한 전쟁은 지나치게 광범위하고 대량학살이 대부분이었다. 그런 20세기가 끝나고 새로운 시대가 오기를 갈망한 것은 인류 모두의 공통된 꿈이기도 했다. 그래서 사람들은 밀레니엄을 기다렸던 모양이다.

일상의 변화도 상상을 초월했다. 특히 통신과 정보환경의 변화는 상상을 초월했다. 자고 일어나니 세상이 바뀌었다는 고사가 딱 들어맞을 정도로 많은 변화들이 일어났다. 20세기 초 야전군인들이 들고 다녔던 무전기보다 더 가볍고 정확하게 의사전달이 가능한 무선전화가 어린아이들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보급이 됐다. 누구나 양방향 통신을 할 수 있는 시대가 됐다. 지난 20세기 초에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일이다. 그리고 개인용 컴퓨터의 보급과 네트워크 연결은 또 다른 세상을 만들어 냈다. 사이버상의 세계가 21세기에 드디어 열린 것이다.

과거 세기에서는 언론을 통제하기 위해 출판사를 폐쇄하고 기자를 투옥시키며 신문사를 폐간하는 등의 수법을 썼지만 오늘날에는 이런 수법을 쓰는 나라는 미개한 몇 나라에 불과하다. 최근의 언론통제는 팩트에 기반한 사실이 보도되면 팩트는 아니지만 혹은 그것보다 더 대중의 관심을 끌 수 있는 정보를 흘리는 식의 방법을 사용해 대중들이 어떤 것이 중요한지 판단을 할 수 없도록 하고 있다. 혼자서 소화하고 이해할 수 있는 충분한 정보의 양보다 더 많은 정보를 네트워크상에 노출시켜 개인의 정보처리 한계용량을 초과시켜 중요한 사실을 무력화 시킨다.

세상이 빠르게 변하면서 사람들의 삶과 인지능력도 따라서 변해가고 있다. 디지털시대에 맞게 진화해 가고 있는 것이다. 핸드폰이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중요한 전화번호 정도는 거의 외우고 다니던 사람들이 이제는 몇 개의 전화번호만 외우고 다닌다. 대신 전화번호 외우기보다 핸드폰의 앱을 어떻게 사용할 수 있을까에 더 신경을 쓰고 있다. 이런 현상은 범지구적이다.

한국은 밀레니엄 시대에 들어서서 일부 기업들은 세계적인 기업의 반열에 올라서기도 했으며 전 세계적인 또 다른 소비층의 하나로 인식되는 등 많은 변화를 주도하기도 해며 따라가기도 하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고 있다. 그래서 외국인들의 한국의 역동적인 국가라고 한다. 한국이 역동적인 국가라고 하는 것은 지난해 촛불문화 하나만을 보아도 알 수 있다. 고단한 삶의 연속인 일상 중 하루 쉬는 날에 속하는 토요일, 수십 수백만 군중이 모여 촛불을 들고 시위하는 모습은 대자연이 보여주는 경관만큼 위대한 모습이다. 그것을 바라보는 외국인의 눈에 비친 한국은 전 세계에서 가장 다이내믹한 나라 중의 하나이다. 밀레니엄에 속해있는 아들과 지난세기에 속한 내가 함께 촛불을 들고 있다는 것 자체가 역사다,
저작권자 © 경인종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