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때는 지난 1974년 7월 아주 무더운 여름 일요일이다. 날씨는 섭씨 40도가 넘는 미국 텍사스 콜맨 시골마을에서의 일이다. 사위인 제리가 딸 베스와 함께 처가에 ‘여름 손님’ 으로 방문한다. 그런데 무기력하게 모여 앉아서 답답함을 견디다 못해 장인이 한마디 한다.

우리 ‘에벌린 다녀올까’ 라고 제안한다. 에벌린은 콜맨에서 무려 100km나 떨어진 곳이다. 그곳은 식당도 별로 좋은데도 없다. 에어컨도 시원찮은 차로 흙먼지 속을 해치고 가야 한다. 그러나 장인의 제안에 아무도 반대하지 않았다. 4명의 가족은 살인적인 더위 속에 사막 길을 3시간이나 달려 에벌린에 도착한다. 식당에서 저녁 식사를 하고 다시 3시간 동안 황폐한 길을 되짚어 기진맥진(氣盡脈盡)한 채 콜맨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색한 분위기를 깨기 위해 사위가 ‘오늘 저녁 식사 괜찮았죠?’ 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위의 말이 끝나자 장모 왈(曰) ‘난 사실 가고 싶지 않았는데 다른 가족 때문에 찬성했었어.’ 그러자 다른 가족들도 마음속에 있었던 불만을 하나씩 쏟아내기 시작한다.

가족 모두의 말을 맞추어 보니 애벌린에 가고 싶어 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저 아무 말 없이 무기력하게 둘러 않은 어색한 분위기를 바꾸려고 한 장인의 제안에 모두 서로를 배려한다고 생각하고 수용했던 것뿐이었다. 물론 가족의 휴일은 완전히 망가졌다.

미국의 경영 컨설턴트이자 조지워싱턴대학교 교수인 제리 하비 박사의 ‘왜 아무도 No라고 말하지 않는가?’ 에서 합의 도출의 모순 사례로 적시한 글이다. 조직 구성원들이 아무도 동의하지 않는 암묵적 합의를 통해 원치 않는 여행을 떠나는 것과 같은 현상을 ‘애벌린 페러독스(abilene paradox)’ 라고 한다.

우리나라 사회의 특징을 평가해보면 혈연, 지연, 학연의 트리플 패키지(triple package)로 묶인 특수한 인정주의 공동체 사회다. 모두가 암묵적 합의를 통해 찬성한 결정이 최상의 선택이라기보다는 최악의 선택을 하게 하는 ‘애벌린 패러독스’ 의 함정이 우리사회 도처에 널리 퍼져있다. 트리플 패키지로 얽히고설킨 공동체 토양에 소통과 창의성을 배제한 지나친 배려나 인정주의가 우리 사회에 끼치는 해학(害惡)은 실로 엄청 크다고 볼 수 있다. 지금의 나라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는 것을 보면…

우리사회는 눈에 보이는 안전불감증(安全不感症)을 넘어 ‘고도(高度) 정신적 위험사회’의 징후를 들어내고 있다. 눈으로 볼 수 있는 가시적인 위험요소보다 더 무서운 것이 눈으로 볼 수 없는 정신적 위험 요소가 너무 팽배 해 지고 있다. 위험사회로부터의 탈출해 행복하고 안전한 사회, 국민의 삶의 질을 향상시키는 키(key)는 어디에 있는 가? 국가개조론과 같은 것이 과연 정답일까. 정부 조직개편이 최선의 선택일까?
우리는 국가백년대계의 차원에서 폭넓은 토론과 사회적 합의를 거쳐서 신중히 답을 내야 한다. 암묵적 합의를 통해 이루어진 원치 않는 애벌린 여행과 같이 소통의 부제에서 벗어나 그 해답을 찾아 봐야 한다.

온 국민이 지쳐있어 활력을 불어넣어야 한다. 소통과 토론 문화로 그 동안 누적된 적폐와 피로감을 날려 보내야 한다. 책 읽기, 깊이 생각하기, 소통하기, 토론하기, 창의적으로 발상하기, 다양한 인물과의 만나기, 체험하기 등이 일상화 될 수 있는 소통의 문화가 필요하다.

비록 시간은 많이 소요되고 지루할 수 있다. 그래도 국가적으로 어려운 환경에서 소통과 창의적 리더십이 희망이 될 수 있다. 한마디로 우리사회가 지니고 있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어야 한다(thinking outside of the box). 안전한 나라, 나라다운 나라, 국민이 행복한 나라는 고정관념의 틀을 깨고 소통의 문화를 꽃피울 때 희망이라는 이야기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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