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인종합일보] [의학정보] 손발저림의 ‘끝판왕’ 당뇨병성 말초신경병

흔히 병원을 찾는 가장 큰 이유 중 하나는 ‘통증’이라고 합니다. ‘배가 아프다’, ‘머리가 아프다’, ‘무릎이 아프다’와 같이 다양한 통증으로 병원을 찾는 사람이 많은데, 그 중에 신경과를 찾는 많은 사람들은 손과 발이 저린 증상으로 병원을 찾고 있습니다.

손발저림의 원인에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교통사고로 신경이 직접 손상을 받는 경우도 있고, 나이가 들어 디스크가 생겨서 신경을 누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대상포진을 앓은 후에 증상이 발생하기도 하며, 약물 투약 후 부작용으로 손발 저림을 호소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주변에서 가장 흔히 볼 수 있으면서도 아이러니하게 가장 증상 조절이 어려운 원인 중에 하나는 바로 당뇨병에 의해 발생하는 말초신경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왜 흔하지만 어려운 병이라고 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말초신경병, 증상은 어떤가요?

손발저림은 대개 말초신경에 문제가 생겨서 발생합니다. 말초신경은 뇌와 척수로 구성되는 중추신경을 제외한 팔, 다리, 몸통 등에 분포하는 신경을 말합니다. 이 말초신경은 우리 몸을 움직이는 운동신경, 외부로부터의 자극을 몸 내부로 전달하는 감각신경, 심장박동, 땀분비와 같이 우리가 의식적으로 조절하지 못하는 것을 조절할 수 있게 해주는 자율신경, 이렇게 3가지로 구성되는데, 이러한 신경계통에 병이 생기는 것을 통틀어 말초신경병이라고 합니다.

당뇨병은 혈관 속에 포도당 농도가 높아져서 혈관에 합병증을 일으키는 병이므로 혈관 중에서도 특히 신경에 포도당을 공급하는 가느다란 혈관에 문제가 생기면 신경이 충분한 영양공급을 받지 못해 손상되고 말초신경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사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을 가진 환자들이 호소하는 증상은 매우 다양해서 가장 흔한 것은 저린 증상이지만, 이외에도 “따끔거린다”, “찌릿찌릿하다”, “피가 잘 안 통하는 느낌이다”, “시리다”, “화끈거린다”, “남의 살 같다”, “벌레가 기어가는 것 같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그 정도가 심하면 일상생활이 힘들거나 잠을 잘 못 자는 경우도 많습니다. 또 운동신경까지 손상되면 걸을 때 힘이 없어 발이 끌리기도 하며, 자율신경에도 손상이 발생하면 어지러움을 느끼거나 대변, 소변을 보는데 불편할 수도 있고, 성기능에 장애가 오기도 합니다.


말초신경병, 어떻게 알 수 있나요?

우리나라도 서구식 식생활 등으로 당뇨병의 유병률이 빠른 속도로 증가하고 있고, 그에 따라 말초신경병도 늘어나는 추세입니다. 당뇨병 조절이 안되거나 오래 앓았을 경우에 더 흔히 발생하는 것으로 되어 있으나 당뇨병 진단 후 초기, 심지어는 당뇨병으로 진단되기 이전인 ‘당뇨전단계’라 불리는 시점에서 발생하기도 합니다. 그래서 만약 당뇨를 앓고 있는데 손발에 저린 증상이 있다면 당뇨가 잘 조절되고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필수적이며, 기존에 당뇨를 진단받은 적이 없는데 손발저림을 느끼기 시작하였다면 혈당 검사를 해서 당뇨가 있는지 확인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다른 병들과 마찬가지로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은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하다고 할 수 있고, 그 예방의 핵심은 물론 당뇨의 적절한 조절이라고 하겠습니다. 당뇨는 말초신경병 외에도 뇌졸중, 심혈관질환, 안과질환, 신장(콩팥)질환 등 다양한 합병증을 초래하므로 조절의 중요성은 굳이 더 언급할 필요는 없겠습니다. 만약 이미 손발저림이 생겼다고 한다면 적절한 초기 진단과 치료가 중요합니다. 저림 증상에 대한 자세한 병력 청취와 진찰을 하고 기존 병력이나 혈액 검사를 통해 당뇨를 확인하면 진단할 수 있습니다. 때때로 병원에서 ‘신경전도검사’라고 하여 신경기능을 평가하는 검사를 추가적으로 시행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병을 진단하기 위해 이 검사를 꼭 해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말초신경의 손상 정도가 어느 정도로 심각한지 평가해서 적절한 치료를 할 수 있게 도와주며, 다른 원인에 의한 말초신경병과도 구분할 수 있게 해줍니다. 특히 목이나 허리의 척추질환으로 인해 발생하는 손발저림은 증상이 매우 유사하고 이 경우에는 디스크가 있다면 수술을 해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진단을 좀 더 정확하게 하기 위해 바늘을 꼽아서 평가해보는 ‘침근전도 검사’를 시행하기도 합니다.
그러면 치료는 어떻게 이루어질까요?

기본적으로 당뇨조절이 잘되고 있는지 확인한 뒤에 저림 증상이 지속되면 약물치료를 시작하게 됩니다. 관절통이나 타박상 같은 경우에 흔히 사용하는 약물로 우리가 보통 ‘진통제’라고 일컫는 계통의 약물은 대개 ‘항소염제’라고 하는데 이 항소염제 약물을 사용해 볼 수도 있지만,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증 환자들 대부분의 경우에는 신경병성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특화된 약물을 사용합니다. 정상적인 감각을 전달해야 하는 신경이 손상되어서 오히려 저림, 화끈거림과 같은 불편한 감각을 전달하는 것이 신경병에 의한 통증의 특성이기 때문에, 신경병성 통증에 주로 쓰는 약물들의 작용기전이 바로 이러한 불쾌한 감각의 전달을 막아주는 것입니다. 최근 들어 여러 약물들이 개발되어 사용되고 있으나 대부분의 약물은 사실 처음부터 통증을 조절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것은 아니고, 뇌전증(간질)이나 우울증 같은 중추신경계 혹은 정신 증상을 조절하기 위해 개발되었던 약물이 나중에 통증을 호전시킨다는 것이 알려지게 되어 그 사용범위가 확대된 경우가 많습니다.

당뇨병성 말초신경병에서는 장기간의 지속적인 약물 투여가 무엇보다 중요합니다. 흔히 우리는 타박상 같은 일반적인 통증의 경우에는 진통제를 안 먹어도 수 일 지나면 통증이 호전되고 특별한 후유증을 남기진 않는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고, 따라서 이런 경우는 개인의 선택에 따라 약을 안 먹어도 큰 무리는 없습니다. 하지만 신경이 손상되어서 오는 통증은 꾸준히 지속되며 시간이 지나면 더욱 심해지는 것이 특징이고, 나중에 만성 통증으로 이행된 시기에 조절하려면 훨씬 더 힘들기 때문에 가능한 빠른 조절이 중요합니다. 보통 치료를 시작하는 시점은 환자가 일상생활에 불편을 느끼기 시작할 무렵입니다. 한번 투약을 시작하면 대개 수 주에서 수개월까지 장기간 복용을 지속하는 것이 좋고, 나중에 증상이 호전되면 서서히 줄여서 약물을 끊어볼 수 있습니다. 만약 여러 가지 약물을 투여해도 호전되지 않거나 약물로 인해 부작용이 있다면 통증에 대한 다른 치료 방법으로는 시술치료, 물리치료 등이 있습니다.

아무리 약물로 통증을 잘 조절한다고 하여도 당뇨 조절이 잘 안 된다면 통증 조절에 실패할 수밖에 없습니다. 당뇨조절은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고 평생을 신경 써서 꾸준히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당뇨 조절에 실패하고, 그에 따라 통증도 심해져서 고통스러워하는 환자들을 많이 봅니다. 통증을 보는 의사들에게 ‘끝판왕’이라고 불리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하지만 평소에 올바른 식습관을 갖고, 당뇨가 생겼을 경우 꾸준히 조절하며, 필요 시 적절한 약물을 투여한다면 예방과 치료가 가능한 병이기도 합니다. 당뇨를 잘 조절하면 손발저림 뿐만 아니라 뇌졸중, 심근경색 같은 더 무서운 합병증도 예방할 수 있으니 우리 몸을 위해 그보다 더 중요한 투자는 없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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