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선영 부장
▲신선영 부장

 

[경기= 신선영 기자]

“제대를 명 받았습니다”

친정조카가 무사히 군생활을 마치고 인사를 왔다. 연초부터 사흘째 백령도와 연평도 일대에 포격이 쏟아지며 남북 충돌 위험이 고조된 가운데 조카의 전역이 무척이나 반갑다. 

필자는 아들이 없기 때문에 자식을 군대에 보내는 마음을 간접적으로 공감할 뿐이다. 

지난해 9월 시행된 ‘수술실 CCTV 설치법’, 이른바 ‘권대희법’도 강남 성형외과에 가서야 알았다. 딸아이 수술을 기다리는 2시간이 얼마나 초조했는지…. 의료사고로 아들을 잃고 나서 7년간 권력과 사투를 벌인 어머니의 타들어가는 심정을 뒤늦게 알아채는 것이다.

‘세상에 내 이름으로 된 흔적을 남기겠다’던 스물다섯 청년의 버킷리스트는 과다출혈로 수술실에서 목숨을 빼앗긴 아들의 억울함을 밝히겠다는 모성으로, 법(法)이 됐다. 의료진과 환자 모두를 안전하게 지킬 수 있는, 다시는 자신과 같은 피해자가 생기지 않길 바라면서 세상에 남긴 흔적이다.

김용균, 태완이, 윤창호, 구하라…. 별이 되어 다른 이들을 지켜준 아픈 이름들을 불러본다.  가장 위험한 작업을 가장 약한 이들에게 떠넘기는 위험의 외주화를 막고 일하다 죽지 않을 권리를 지켜줄 ‘김용균법’. 법의 시간을 멈추는 공소시효, 살인죄에 대한 공소시효 폐지 법안이 된 ‘태완이법’과 음주운전에 대한 처벌을 강화한 ‘윤창호법’. 부양의무를 하지 않은 부모에게 자식의 재산이 상속되는 것을 막자는 취지에서 입법을 추진 중인 ‘구하라법’. 

평온한 날들에는 이기적 유전자가 역지사지(易地思之)를 누른다. 부모가 돼서야, 우리가 타인의 이름에 얼마나 많은 빚을 지며 살아가고 있는지 알게 된다. 

조카의 군 복무기간이라 핏줄이 곤두선 걸까. 지난해 7월 호우 피해 실종자를 수색하다 숨진 해병대 채 상병 사건이 내내 마음을 흔들었다. 대원의 죽음을 왜곡하고 축소하려는 움직임에 정면으로 맞선 박정훈 대령을 향한 외압과 비난에 부아가 치밀었다. 

박 대령은 상관의 명령에 불복했다는 혐의로 해병대 수사단장·군사경찰단장(병과장) 보직에서 해임됐고, 군인아들을 둔 부모들의 커뮤니티에는 복직 탄원이 빗발쳤다. 국방부 검찰단은 구속영장에서 ‘법령 해석에 대한 무지가 범행의 동기’라며 대령을 깎아내렸고, 언론은 ‘호남 출신’ ‘좌파’라는 가짜뉴스로 상처를 헤집었다. 

그럼에도 그는 일관된 소신과 결기로 당당했고, 군검찰과 법정에 설 때마다 임관 동기를 비롯한 선후배 해병 동료들이 ‘끈 떨어진’ 박 대령 곁을 지켰다. 이들은 그가 평소 부대원들을 인격체로 존중하며 수평적 리더십을 보여줬다고 입을 모은다. 상명하복(上命下服)으로 대표되는 군 조직에서 이들의 신뢰는 더욱 값지다. 

군대 밖 조직에서도 커다란 문제가 발생하면 친분이 있던 사람들도 오해와 연루를 우려해 당사자와 접촉을 끊거나 “원래 문제가 있던 사람”으로 몰아버린다. 그렇게 정의와 진실은 빛을 잃고, 사실이 아닌 말들에 엮여 스스로에게 칼을 겨누기도 한다. 

하지만 박 대령의 정의를 향한 소신은 대한민국 군대와 일터의 수많은 약자들에게 마지막 보루가 되리라 믿는다. 괴테는 욕망에 따라 움직이는 개인 내면을 깊이 있게 들여다본 역작 「파우스트」에 ‘사람을 마지막 실족(失足)에서 물러서게 하는 것은 사랑’이라고 썼다. 

자식과 친구는 잃었지만, 남은 이들이 공정과 상식이 통하는 세상에서 살기 바라는 염원과 연대가 우리 사회를 공고히 지켜줄 것이라는 믿음으로 새해를 시작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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