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서형 논설위원. 美변호사

미국인이 한국음식문화를 제대로 배우려면 우선 한국어를 배우고 한국을 직접 방문하거나 최소한 미국 코리아타운(Koreatown)을 찾아 음식을 체험하는 것이 맞다. 이유인 즉, 영어로는 “벼”도 “rice”이며 “쌀”도 “rice”이고 “밥”도 “rice”로 번역된다. 또한, 세계적 명성을 지닌 웹스터(Webster)사전에서도 “김치(kimchi)”를 “피클(pickle)” 형태로 번역하고 있다.

필자는 2012년부터 미국상법(The US Business Law)을 강의하고 있다. 상법은 한국상법을 미국상법으로 영어로 번역한 것이 아니라 미국상법을 한국상법으로 한국어로 번역한 것이 맞다.

미국상법에서는 “계약권리(contract right) 양도(transfer)”는 “assignment,” “화폐증권(negotiable instrument) 양도”는 “negotiation,” “부동산권리(real estate right) 양도”는 “conveyance”라고 부른다. 하지만 한국어로는 “assignment”도 “양도”이며 “negotiation”도 “양도”이고 “conveyance”도 “양도”로 번역된다. 한국인이 상법을 제대로 배우려면 우선 영어를 배우고 미국을 직접 방문하거나 최소한 한국에서 필자수업을 듣고 법을 체험하는 것이 맞다.

이탈리아에는 “번역가는 반역자이다(The translator is a traitor)”라는 속담이 있다. 이는 같은 유럽어라도 영어를 이탈리아어로 번역하면 본래 뜻이 손상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물며, 앵글로색슨어족에 속하는 영어를 이와는 사뭇 상이한 우랄알타이어족에 속하는 한국어로 번역하면 어떠할까? 이러한 번역과정에는 엄청난 노력과 고통이 필연 따를 것이다.

필자는 오랜 세월 팝송을 번역해 왔다. 언어의 망망대해(茫茫大海)에서 가장 온전한 번역을 찾아내는 과정은 마치 예술가가 혼신의 힘을 다해 예술품을 창조하는 과정에 견줄 수 있다. 작품이 완성되는 순간 느낄 수 있는 환희(ecstasy)는 이 땅 위에 비길 것이 없도다.

필자가 아무리 노력해도 필자의 팝송번역은 결코 온전할 수 없다. 영문원본을 듣고 영어로 직접 감상하는 것이 훨씬 더 와닿고 감동적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필자는 영어가 약한 분들을 위해 최선을 다해 팝송을 번역해 왔다. 필자번역에 오류가 빈번히 존재한다면 이는 독자에게 죄를 짓는 행위이며 독자는 팝송을 제대로 감상할 수 없을 것이다.

필자는 오랜 기간 미국상법 영어의 한국어 번역을 주시해 왔다. 필자가 내린 결론은 이러한 번역에는 철학, 일관성, 논리성이 결핍된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이는 어쩌면 죄악이다.

필자는 미시간대학원(Michigan MBA)에서 시카고대 출신 세계적 석학에게 미시경제학(microeconomics)을 제대로 배웠다. 미국에서는 주입식 교육을 배제하고 하버드케이스 교재 등을 통해 이해력, 응용력, 창의력을 키우는 교육에 주력하고 있다. 필자는 이에 많은 영향을 받고 한국에 귀국해서도 학생들에게 저렇게 가르쳐야 되겠다고 다짐했다.

“Indifference Curve”는 “X 재화와 Y 재화를 구입한 경우 효용(utility)에 차이가 없는 곡선”을 의미한다. 따라서 “Indifference Curve”는 “등효용곡선(等效用曲線)”으로 번역되어야 온전하다. 하지만 한국 미시경제학 서적에는 “무차별곡선(無差別曲線)”으로 번역되어 있다.

필자수업을 수강하는 와세다대학생 말로는 일본서적에도 “무차별곡선”으로 번역되어 있다고 한다. 마치 “무차별폭격”을 연상시키는 험한 표현이다.

미국상법 용어에는 철학, 일관성, 논리성이 엄연히 존재한다. 예를 들어, “er/or”은 능동의 의미이고 “ee”는 수동의 의미이다. “Examiner”는 “출제자”이고 “examinee”는 “수험생”이다. 하지만 한국법률용어는 일일이 단순 암기해야 한다. “Mortgagor”는 “저당권양도인”으로 번역되는 것이 온당하고 “mortgagee”는 “저당권양수인”으로 번역하는 것이 온당하나, 우리는 이를 각각 “저당권설정자”와 “저당권자”로 번역하고 있다. “Lessor”는 “임대권양도인”으로 “lesee”는 “임대권양수인”으로 번역해야 하나, “임대인”과 “임차인”로 번역하고 있다.

우리는 법률용어 암기에 너무 많은 시간과 정력을 낭비하고 있다. 오히려 그 시간을 활용하여 학생들의 이해력, 응용력, 창의력을 키우는 데 투자해야 되는 것이 아닐까?

“피고용자(employee)”는 “고용자(employer)” 회사에 소속되어 있어 별도의 “독립사업체(independent business)”가 없다. 하지만 고용자가 “인테리어사”를 고용하는 경우 “인테리어사”는 “독립사업체”가 있으므로 “독립사업체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라고 불린다. 마찬가지로 고용자가 고용한 “변호사,” “개인택시운전사”도 “독립사업체”가 있으므로 미국에서는 모두 “독립사업체계약자”라고 불린다.

하지만 한국상법에서는 무조건 암기해야 한다. “인테리어사”는 “수급인,” “변호사”는 “수임인,” “개인택시운전사”는 “용역계약자”라고 무조건 외워야 한다.

필자는 영어공부를 위해서는 영영사전을 적극 추천하는 바이다. 이열치열(以熱治熱)과 비슷하게 이영치영(以英治英)이다. 영어는 영어로 다스려야 한다.

영한사전에 중독된 채 “독립사업체계약자(independent contractor)”를 “독립적인” 그러니까 “갑을입장이 아닌 동등한” 계약체결자라고 번역한 지인이 있었다. 필자의 설명은 아예 무시한 채 자신만의 궤변만을 늘어놓았다. 한국어로 번역된 엉터리자료를 하루 종일 들이대며…

어찌 감히 국제변호사에게 영어를 가르치려 드는가? 어찌 감히 국제변호사에게 미국상법을 가르치려 드는가? 개인의 자존심보다는 사안의 진위가 훨씬 더 중요한 법이다.

오늘처럼 종일 궂은비가 내리는 주말에는 서재에 처박혀 막걸리 한잔 기울이며 깊은 상념에 잠긴다. “번역에 대하여, 고통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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