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배 칼럼니스트, 백석예술대학교 교수

지난 글에서 다루었던 것처럼, 오늘날 업사이클링(Upcycling)이 신산업의 새로운 패러다임이 되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가정에서 버려지는 생활 쓰레기와 공장의 산업 폐기물, 버려지는 포장지, 폐자재, 폐기물 등 버려지는 쓰레기를 또 다른 상품의 자원으로 재활용할 수 있는지 그 가능성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출발한 신산업이다.

버려지는 쓰레기를 뒤져서 새로운 가능성을 찾으면 그것에 디자이너의 창의적 발상력을 첨가하여 새로운 기능과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그렇게 업사이클링 상품이 거듭나게 되면 그만큼 쓰레기의 양도 줄어들게 된다.

이처럼 디자이너의 창의적 노력을 통해 버려지는 쓰레기에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면서 쓰레기의 양을 줄인다면 그만큼 자연의 파괴를 막을 수 있으며, 넘치는 쓰레기로 병들어 버린 지구의 산과 바다와 강과 하천의 물과 공기를 회복시킬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자연을 되살리는 노력을 하는 가운데 탄생한 업사이클링 산업은 이제 모든 지구인의 희망으로 떠오르고 있다. 

업사이클링 상품이 늘어나는 만큼 버려지는 폐기물이 줄어드는 것은 당연하다. 쓰레기의 양이 줄어드는 만큼 미래 세대에게 건강한 지구를 물려줄 희망은 커질 것이다.

이런 부푼 희망을 품고 세계 각국의 정부와 기업들과 뜻있는 디자이너들이 발 벗고 앞장서서 업사이클링 상품의 개발에 힘을 모으고 있다.

이런 선한 의도에서 오늘날 업사이클링 열풍은 전 세계적인 현상이 되고 있다. 영국과 이탈리아, 독일과 스위스, 스페인 같은 유럽 국가로부터 미국과 캐나다 등 북미 대륙을 지나 아시아로 그리고 우리나라에도 그 바통을 이어달리기 시작했다.

국내에도 업사이클링 상품을 연구하는 기업들이 하나둘 늘고 있다. 뜻있는 디자이너를 중심으로 친환경 창업을 하거나 지역사회 협동조합이 생기는 등 열풍이 쓰나미처럼 일고 있다. 업사이클링은 단순히 폐기물을 재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계속해서 업그레이딩 되고 있다.

특히, 지방 도시를 필두로 전국의 환경 관련 기업과 지역대학의 디자이너 또는 환경 전문가들이 협력하여 지역의 미래를 주도할 지속 가능한 아이템으로 업사이클링을 선택하였다.

이들은 업사이클링을 사회혁신을 이끌 지속 가능한 사업으로 믿고 업사이클링의 활성화에 모든 노력을 집중하고 있다. 이런 업사이클 상품을 생산할 때 기업은 경제적 이익을 누릴 수 있고, 사회와 국가는 환경적 가치를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우리 민족의 혈관 속에 흐르는 자린고비 정신에서 업사이클링의 뿌리를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돌려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던 근면한 생활에서 자연스럽게 우러나온 삶의 지혜였다.

오랜 기질 속에 면면히 이어온 민족정신이었다. 자연을 벗 삼아 살아온 우리 민족은 농사를 지으며 살아왔다. 가난과 빈곤 속에 빠듯한 삶을 살면서도 부지런하고 성실하게 농사지으며 살았다.

언제나 땀 흘려 일했지만 부족했고 삶은 팍팍했다. 소작농의 삶이 그랬다. 과거 일제 강점기 때의 억압과 착취로 고통받으면서도 언제나 아껴 쓰고, 나눠 쓰고, 돌려쓰고, 다시 쓰고, 고쳐 쓰며 고단한 삶을 이길 수 있었다. 넉넉지 못한 삶을 살면서 검소한 생활 습성이 몸에 배었고 쌀 한 톨 허투루 버리지 않았다. 

이제 대한민국은 지식산업과 디지털산업을 주도하면서 세계 속에 선진국으로 우뚝 섰다. 정말 잘 사는 나라가 되어서 가정마다 풍족함이 넘쳐서 버려지는 쓰레기가 심각한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

우리의 옛 얘기 중에 자린고비 얘기가 있다. 어떤 지독한 구두쇠 영감이 살았다. 장독대의 고추장이 자꾸 줄어드는 것을 수상히 여긴 영감이 며느리에게 장독대를 지키도록 했으나 장독 속의 장이 계속 줄어들자 이에 열받은 영감은 어느 날 직접 장독대를 지켰다.

얼마의 시간이 흐른 뒤 파리 한 마리가 앉아서 이곳저곳을 들쑤시고 다니다가 날아가 버렸다. 노인은 기어이 쫓아가서 그놈을 잡고 뒷다리에 묻은 장을 말끔히 빨아 먹었다. 참으로 고약한 얘기다. 

또 다른 이야기를 보자. 산골 마을 초가지붕 아래 천정에는 굴비가 한 마리 매달려 있다. 온 가족이 밥상 앞에 둘러앉아 보리밥 한 스푼 입에 물고 굴비만 뚫어져라 보고 있다. 정말 웃기는 이야기이다. 이 옹고집 얘기는 오늘날 전통 고추장 브랜드 ‘옹가네’로 스토리텔링 되어 유명 브랜드가 되었다. 

또 이런 이야기도 있다. 어느 고을의 5일 장에 한 여인이 나타났다. 그녀는 생선가게에서 생선을 이리저리 만지면서 한참을 주물럭거렸다. 한참을 그러다가 말없이 사라져 버렸다. 집으로 돌아온 그녀는 두 손을 깨끗이 씻고 그 손 씻은 물로 국을 끓여서 온 가족이 맛있게 먹었다. 정말 황당하다.

그러나 이런 얘기들은 모두가 자식에게 근검절약하는 태도를 가르치려는 선한 의도에서 출발한 일종의 해학이다. 그러나 이런 자린고비는 검소함이 너무 지나치고 인색한 노랭이의 불편한 진실을 꼬집는 표현이기도 하다.

아마도 우리 조상들은 미래를 보는 혜안이 있었던 것 같다. 그래서 아끼고, 절약하면서 검소하게 살면서도 함부로 낭비하지 않았다. 늘 다시 쓰고 고쳐서 썼다. 절약하여 아끼면서 그것을 나누던 삶의 지혜가 있었다. 미래세대를 위해 희생의 거름이 되었던 그들의 삶은 오늘날 업사이클링의 철학적 뿌리가 아닐 수 없다. 

이제 렌즈를 70년 전으로 옮겨서 당시의 생활상을 돌아보자. 가난했던 그 시절, 이른 봄이 오는 걸 두려워했다. 보릿고개를 견뎌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는 오늘처럼 풍족한 삶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가난한 소작농으로 살면서 바쁜 농사일로 고단했지만, 검소하게 살면서 언제나 아끼고 모아서 저축했다. 

고장 난 농기구는 고쳐 썼다. 일상의 생활 도구는 직접 만들었다. 바쁜 농번기를 넘기고 긴 농한기가 되면 싸리나무를 채취하여 싸리 바구니와 싸리 망태기와 싸리 멍석, 싸리 돗자리를 만들고, 싸리발과 싸리 빗자루를 만들었다.

추수가 끝나면 탈곡하고 남은 볏짚을 모아서 각종 생활 도구를 만들었다. 당시의 생활 도구는 대부분 나무와 볏짚을 엮어서 만들었다. 지극히 창의적인 개척정신이 그 속에 녹아있었다. 

떨어진 양말은 기어 입었고 찢어진 고무신도 꿰매어 신었다. 당시 엄마들의 낡은 치마는 아이들의 반바지로 둔갑했고 볕 짚을 엮어서 짚신을 삼아 신었다. 그렇게 가난한 삶을 살면서도 빈곤의 늪에 빠지지 않고 더욱 아끼고 절약하였다.

그들은 다가올 미래를 위해 현실의 고통과 시련을 견디면서 기꺼이 아끼고 모아서 훗날에 얻을 미래 가치에 목표를 두었다. 미래를 향한 꿈이 있었기에 현실에서 희망을 품고 견딜 수 있었다.

고단했던 삶의 흔적을 해학으로 풀어냈던 조상들의 여유가 역경을 견디는 힘이 되었다. 그들은 인고의 날을 살면서도 절대 좌절하지 않을 수 있었고 끝까지 근면·성실할 수 있었다. 그들은 삶이 고단했지만 내 것만을 움켜잡지 않았다.

애써 모아 놓은 것을 이웃과 어울려 품앗이하고 나누면서 살아온 삶의 흔적에서 업사이클링의 정신적 뿌리를 찾을 수 있다. 

역사의 수레바퀴는 덧없이 돌고 그 흔적을 따라 걷다 보면 수많은 역경 속에도 절대로 꺾이지 않았던 조상들의 기백을 보면서 미래를 위해 품은 희망이 꿈을 볼 수 있다. 지독하게 아껴 쓰고, 나눠 쓰고, 함께 쓰고, 고쳐 쓰고, 다시 쓰던 지혜가 선진 대한민국을 만든 소중한 원동력이 되었음을 다시 깨닫게 되었다. 

이제는 이런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오늘날 우리의 눈에는 그저 과거의 가치로 여질 뿐이었다. 근면·성실했던 그때를 다시 볼 수 없을 줄 알았다. 특히, 자린고비 얘기는 검소한 생활 가치를 깨닫게 하는 시금석이었다. 삶의 흔적이었으며 계속 지켜져야 할 소중한 가치였다.

급진적 변화의 흐름 속에서 친환경 업사이클링에 대한 인식이 그 반향을 일으키고 있다. 요즘처럼 업사이클링에 열광하는 사회적 분위기는 과거 어느 때도 볼 수 없었다. 이런 현상은 친환경을 추구하는 시대적 흐름과 잘 맞아떨어진 결과이다.

그래서일까? 업사이클링 상품을 찾는 고객들도 날로 늘고 있다. 이는 소비자들의 심리적 욕구를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반영하여 고객의 필요를 충분히 충족시켜 주고 있기 때문이다.

이왕에 이런 분위기가 무르익었으니, 기업과 정부와 학교가 협력하여 사회적 책임과 윤리적 경영을 선도하는 새로운 변화가 시작되었으면 좋겠다. 건강한 지방 도시를 창출하기 위해 산·학·관이 협력하여 시도해 왔던 변화의 노력을 이어받아 이제는 온 국민이 주도적으로 참여하여 수많은 업사이클링 기업이 새로 탄생하길 기대한다.

그렇게 탄생한 국민 기업들이야말로  업사이클링을 통해 푸른 지구를 지키는 세계 속의 첨병이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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