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강준의 논설주간. 경영학 박사

[강준의 논설주간]

현실에서 크게 보면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과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으로 나뉜다.

스스로 일을 찾아서 하는 사람을 능동적인 사람 더 나아가서 창의적인 사람이라고 표현하고 주어진 일만 하는 사람을 수동적이고 기계적인 사람이라고 말한다. 아무리 뛰어난 기능의 컴퓨터도 소프트웨어가 입력되지 않으면 기계조합에 불과할 뿐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천부의 재능이 있다 해도 적극성과 열의가 없으면 그와 다를 바 없다.

능동적인 창의성은 단순히 ‘無에서 有를 창조’하는 것이라기보다는 기존의 지식과 정보를 토대로 어떤 사물이나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능력’이라고 할 수 있다. 즉, 창의적이라 함은 과거나 현재의 구조적 현실보다 새로운 사물이나 상황을 이끌어 내는 것이다. 인간관계에 있어서도 능동적인 사람과 수동적인 사람의 관계성에 기인한 사회적 활동은 구분되고 있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며 대인관계를 통해 소통, 이해, 협업을 나누고 성장한다.

대인관계는 우리의 행복과 만족감을 증진시키며, 사회적 지지와 안정감을 제공한다.서로 배우고 성장하며, 갈등을 해소하고 협력하여 더 큰 성취를 이룰 수 있기 때문이다. 대인관계는 심리학적인 관점에서도 매우 중요하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로서 타인과의 상호작용과 연결이 필수적이다. 우리의 정서적 안정과 행복을 증진시키며, 사회적 지지와 안정감을 제공한다. 이를 통해 자아 개발과 성장이 이루어지고, 자아에 대한 이해와 자기 인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이 되기 때문이다.

인간관계를 형성하는 방법도 예전과 달라졌다. 요즘은 스마트 폰의 보급으로 인해서, 메시지 기능을 통해 가족이나 친구, 회사 동료 등과 물리적, 시간적인 제약 없이 언제나 연락을 주고받을 수 있다. 인간은 현생 인류가 탄생한 이후, 450만 년에 걸쳐 사회적 동물로서 진화를 해왔다. 진화의 속도가 현대의 기술 발전 속도를 전혀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인공지능을 비롯한 기계화의 메커니즘에 따라 사람의 가치도 상대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고 여겨진다. 이름 하여 몸값이고 자신의 쓰임에 따른 가치라고 표현한다.

미국의 베들레헴 철강회사의 회장은 “목 아래는 겨우 2달러의 가치가 있지만 목 위는 사람마다 큰 차이가 있다”며 다음과 같은 창의성 수준의 차이를 “똑같은 양의 강철 덩어리로 어떤 사람은 쇠공을 만들어 5달러의 이윤을, 또 어떤 사람은 바늘을 만들어 350달러의 이윤을, 또 다른 어떤 사람은 손목시계의 미세한 스프링을 만들어 1천 달러의 이윤을 낼 수 있다”고 했다.

적극적 사고와 창의적 사고는 컴퓨터의 소프트웨어와 같다. 누구나 자신을 기계적 인간이라고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가만히 자신의 지나온 하루를 되돌아보면 대답은 명료하게 나타난다. 일을 찾아서 했는지, 지시나 명령에 의해서 했는지 일의 결과에서 분명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 지시나 명령은 곧 자기라는 컴퓨터에 타인이 만든 소프트웨어를 입력시키는 수용의 재능이라는 컴퓨터에 스스로 행동원리를 입력했다는 것과 같다. 남의 지시나 명령에 의해서 기계적으로 움직인 사람의 생명은 짧을 수밖에 없다. 용량이 점차 비대해지고 다변화된 산업사회의 기능적인 측면이 고도화해 갈수록 또다시 새로운 용량과 기능의 기계가 요청되는 당연한 논리에 의해서도 답보의 기계적 인간은 도태가 필연적일 수밖에 없다.

우리 주변에는 창의적인 것과 기계적인 유형으로 구분되는 일들이 많이 있다. 쉬운 예로 들자면 합리적인 것과 비합리적인 것으로 표현할 수 있을 것이다. 또 다르게 표현하자면 상식적인 사람과 비상식적인 사람의 생각과 행동으로 비치기도 한다.

똑같은 현실과 상황이 주어지더라도 자신의 생각과 관점에 따라 전혀 다른 양상으로 해석하고 표현하는 것을 볼 수 있다. 긍정적인 측면에서 보면 창의적인 발상의 전환으로 인해 긍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만 부정적인 측면에서 본다면 내로남불 즉 자기의 아집과 이기적인 생각으로 인한 편협하고 뻔뻔한 모습이라 할 수 있겠다. 요즘 우리 사회의 정치를 비롯한 직업적 집단의 행태와 처세를 보노라면 창의적이고 합리적인 것보다는 다분히 비합리적이고 이해할 수 없는 것들로 가득 차 있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자신의 욕심과 고집 그리고 이기적인 것을 위하여 도무지 납득할 수 없는 오기를 부리고 있는 것은 아닌가 생각된다, 대중적 인지도를 이용하여 비상식적인 것들을 창의적이고 옳은 것으로 치부하기에는 우리 사회가 지극히 상식적이라는 것과 상식과 원칙을 벗어나서는 인정받기 어렵다는 것을 알았으면 좋겠다.

우리 사회가 상식적인 사람들이 살아가기에 불편하지 않았으면 싶은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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