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사진 윤재천기념사업회 제공

[윤재천 수필 ㉘]

나는 청바지를 좋아한다.

다크 블루, 모노톤 블루, 아이스 블루…. 색의 농도와 모양에 따라 많이도 모았다.

모임에도 특별히 눈에 거슬리지만 않으면 나는 청바지를 입는 것이 더 편하고 자신 있다.

요즘은 시간의 빠름을 절감한다.

강의 시간에 늦지 않으려고 마음을 조이고, 퇴근 후 동료들과 어울려 목로주점에서 잘 못하는 술이지만 분위기가 좋아 잔을 기울이는 사이, 시간 열차는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다.

나이를 더하는 것은 안타까운 일도 아니고, 누구에게 투정을 부릴 일도 아니다. 젊음이 투쟁에 의해 얻어진 노획물이 아니듯, 늙음도 잘못의 대가로 받은 형벌이 아니기 때문이다.

몇 십년을 주기적으로 반복하는 강의지만 늘 부담스러웠다. 틀에 박힌 생활, 보직에 따라 주어지는 업무, 선생이라는 이유 때문에 무조건 참아야 하는 이율배반의 처신….

청바지와 캐주얼을 즐겨 입게 된 것은 지나치리만큼 형식에 매달려 규격화된 채 살아온 내 젊은 날에 대한 일종의 반란이거나 보상심리에 기인한 것인지도 모른다.

이제는 눈치 보는 일에서 벗어나 마음을 비우고 살고 싶다. 아무데나 주저앉아 하늘의 별을 헤아리고, 흐르는 물줄기를 바라보며 돌아갈 수 없는 시간들이 모여 사는 곳을 향해 그리운 이름이라도 힘껏 불러보기 위해서는 청바지가 제격이다.

청바지는 서양 노동자들이 즐겨 입는 작업복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나로부터 자유롭기 위해 청바지에 간단한 남방차림을 일상복으로 애용하고 있다.

누구 앞에서도 어색하거나 부끄럽지 않다.

격식과 권위를 버린 내 차림새는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심리적 부담을 덜게 한다.

삶의 군더더기를 벗어던지고 나면 허망한 것에 마음을 빼앗기는 것을 멀리 할 수 있다.

청바지는 나를 모든 구속으로부터 벗어나게 하는 탈출의 동반자요, 동조자다.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현재의 처지와 나이가 아니고, 진취적 사고와 자신의 삶을 주도하는 자세다. 죽음은 나이에 비례하지 않는다. 의지에 따라 젊게 살 수 있고, 건강하게 오래 살 수도 있다.

누렇게 익은 곡식을 바라보며 흐뭇한 미소를 흘리는 농부처럼 노년을 내 것으로 소유하고 싶어, ‘청바지가 잘 어울리는 남자’를 꿈꾸며 내 길을 걸어가고 있다.

젊은 노년으로 늘 청바지처럼 질긴 - 구김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살고 싶다.

…………………………………………………………………………………………………………………………

운정 윤 재 천

경기도 1932년 안성출생, 전 중앙대 교수, 상명여대 교수 등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등 저 서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 ‌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남이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7권), ‘퓨전수필을 말하다’, ‘수필아포리즘’, ‘구름 위에 지은 집’ 등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올해의 수필가상, 흑구문학상, PEN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산귀래문학상 등

저작권자 © 경인종합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관련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