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사진 윤재천기념사업회 제공

[윤재천 수필 ㉝]

큰 강의 발원지는 작은 샘 하나다.

솥뚜껑 하나로도 가려질만 한 샘에서 솟아오르는 물줄기가 모이고 흘러 장강(長江)을 이루고 계곡을 넘나든다. 처음 솟아난 물방울 하나가 큰 강의 물줄기가 될 줄은 그 물방울 자신도 알지 못했을 것이다. 무엇이든 처음 시작은 작고 순수하다. 그러나 시간이 갈수록 세월이 흐를수록 마음은 방만해지고 뜻은 퇴색되어간다.

수필 쓰는 사람은 많지만 좋은 수필을 만나기 어렵다고 한탄하기 전에 스스로를 되돌아보아야 한다.

수필은 모두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거친 것을 다듬고 가꾸는 것이다. 일필휘지(一筆揮之), 붓 가는 대로 쓰는 글이 아니라 본마음을 갈고 닦아 수많은 수련이 있은 다음 한 자 한 자 꾹꾹 눌러 쓰는 것이다.

‘청색시대’가 이제 열 번째를 맞는다.

십 년이면 강산도 변한다고 했으니 푸르고 청정한 처음의 마음이 혹여 변색되고 본질이 왜곡된 것은 없는지 한 박자 늦추고 한 걸음 뒤로 물러서서 되돌아보는 여유를 가져야 한다. 모두가 앞으로만 내닫는 시대에 잠깐 발걸음을 늦춰 걸어온 길을 돌아보는 것은 퇴보가 아니라 보다 나은 행보를 위한 점검이다.

서산대사는 ‘눈길 걸을 때는 함부로 밟지 마라. 오늘 내가 걷는 발자국이 뒤에 오는 이의 길이 되느니’라고 했다. 길을 내며 가는 사람의 행보는 따라오는 사람 때문에 더욱 조심스러울 수밖에 없다.

큰 강을 이루며 도도한 물줄기로 흘러가는 청색시대가 처음의 마음을 잃지 않는, 푸르고 맑은 노래로 사람들의 가슴을 촉촉하게 적셔가기를 바란다.

초심(初心)이 본심(本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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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윤 재 천

경기도 1932년 안성출생, 전 중앙대 교수, 상명여대 교수 등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등 저 서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 ‌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남이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7권), ‘퓨전수필을 말하다’, ‘수필아포리즘’, ‘구름 위에 지은 집’ 등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올해의 수필가상, 흑구문학상, PEN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산귀래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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