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사진 윤재천기념사업회 제공

[윤재천 수필 ㉚]

수필은 술이부작(述而不作)-적기만 하고 짓지 않는 사실적 기록이 아니다. 본 일을 그대로 옮겨 적는 르포기사가 아니라, 같은 것을 봐도 자신만의 심안(心眼)으로 보고 마음의 움직임을 진솔하게 따라가는 글이다. 사실적 기록은 생생한 현장감을 주지만, 걸러내지 않은 목격담은 투박하고 불완전하다.

고택(古宅)의 누마루에 걸터앉아 그 집의 생성연대를 가늠하기보다, 그곳에서 살았던 사람들의 숨결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한 칸의 작은 방을 보고 그 방의 규모만 짐작할 것이 아니라, 그 방안에서 이루어졌던 담론과 애환에서 역사의 한 면을 느끼고 마음으로 보듬을 줄 알아야 한다.

고택의 방에 들어서면 좁은 사방의 벽에 사고마저 갇힐 듯한 압박감이 들곤 한다. 하지만 창문을 여는 순간 기우임을 알게 된다. 출입을 할 수 있는 앞문과 생각이 막힐 때 열기 위한 뒷문이 있다. 뒤 창문을 열면 한 그루 매화나 소슬한 대나무와 그 너머로는 뒷산의 소나무 숲이 펼쳐진다. 멀리 흰 구름 흘러가는 하늘까지 닿도록 분방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게 한다.

가진 것은 한 평 방이지만 사방 문을 통해 들어오는 자연의 풍광과 소리와 냄새까지 가슴으로 품어 안을 수 있으니, 골방에 앉아 천하를 소유하는 선인들의 지혜를 배우게 된다. 내가 갖고 있는 것만 내 것이 아니라, 누리고 쓸 수 있는 것이 얼마 만큼이냐에 따라 정신적인 풍요를 가늠하게 한다.

골방의 푸근함을 아는 사람만이 너를 마당의 여유를 즐길 줄 안다. 확실한 주관이 있는 사람만이 객관적 진실을 아우를 수 있고, 흔들리지 않는 단단한 뿌리가 있어야 비바람이 불어도 꺾이지 않는다.

폐쇄적인 사고에 길들여져 내 것만이 옳다고 주장하는 전통 유교와 도덕규범도 세대에 따라 변화하는 유연한 사고를 갖춰야 한다.

독자를 의식하지 않고 쓰는 글은 사념으로 흐를 위험이 있다. 글의 반향을 의식하고 책임감 있는 주장을 펼쳐야 한다. 내 의견을 확실하게 내놓고 비판을 두려워하지 않는 올곧음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주장들이 충돌할 때, 폭발적인 에너지가 창출되며 긍정적 발전으로 이어지므로 비판을 겸허하게 수용해야 한다. 마당에 기화요초(琪花瑤草)를 심는 뜻은 혼자 두고 즐기자는 것이 아니다. 그 마당으로 들어오는 사람들과 기쁨을 함께하자는 배려다. 골방에 앞뒤로 문을 낸 선인들은 작은 방안에 온 우주를 담고자 한 원대한 뜻이 있다.

수필도 문을 활짝 열어젖힐 때, 골방은 더 이상 구석지고 어두운 곳이 아니라 더 넓은 세계, 온 세상을 품어 안는 베이스캠프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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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윤 재 천

경기도 1932년 안성출생, 전 중앙대 교수, 상명여대 교수 등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등 저 서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 ‌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남이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7권), ‘퓨전수필을 말하다’, ‘수필아포리즘’, ‘구름 위에 지은 집’ 등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올해의 수필가상, 흑구문학상, PEN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산귀래문학상 등

▲ 윤재천 교수(사진 왼쪽)는 지난 2022년 6월 자신의 문학저서 및 동인지 3천여 권과 소장품을 제자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안성 윤재천교수기념사업회 배명효 회장에게 기증하고 문인의 도시 안성에서 문학 발전과 전 국민의 현대수필의 모체가 되어 줄 것을 당부했다. 한편, 안성시는 지난 2월 한국이낳은 윤재천 교수의 수필 업적을 기리기 위해 윤교수의 현대수필 필요성을 학생들에 보급할수 있도록 3월~4월경 많은 교수와 학생을 투입하여 세미나·홍보물 제작 배포 등을 개최키로 했다고 밝혔다. (윤 교수 집필실에서) / 사진 = 한국수필문학회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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