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사진 윤재천기념사업회 제공

[윤재천 수필 ㊷]

‘사이비(似而非)’의 사전적 어의(語義)는 ‘겉은 제법 비슷하나 속은 다름’이다.

이러한 뜻보다도 더 어처구니없는 현상이 기정사실화 되어 백주에 횡행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사이비 종교와 정치가, 사이비 교육자, 그 가운데 배제할 수 없는 것이 무제한 양산되는 사이비 문학가다.

다른 분야는 행위에 따른 결과에 의해서 사이비라는 사실이 언젠가는 명백히 밝혀지지만, 문학가에게는 예술이라는 아리송한 연막이 있어 진짜 작가와 사이비 작가의 경계를 뚜렷이 밝혀낼 수 없기에 그 병폐는 더 심각할 수밖에 없다. 우리는 지금까지 작풍에 열중하기보다 발 빠르게 뛰는 사람, 문학을 치부의 방편으로 삼는 사람, 명예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문학을 이용하는 사람 - 이 모두를 의심 없이 문학가라고 말해왔다.

오래 전, 오직 긍지와 자부심으로 작가의 길을 의연히 걸었던 황순원 선생과 영원한 작별을 했다. 그분을 저승으로 보내면서 가슴에 남은 부러움은 선생이 남긴 작품으로서의 예술의 가치다. 선생은 문단생활을 요란하게 함으로써 화려한 경력을 축적하며 살았던 작가가 아니고, 오직 작가로서의 길만 흐트러짐 없이 걸었던 분이다.

‘소나기’를 통해 순수함에서 비롯된 애틋한 사랑의 모습을 그려냄으로써 아름다움이 무엇인가를 보여준 작가로, ‘카인의 후에’를 비롯한 일련의 작품을 발표하여 분단현실이 얼마나 처절하며 인륜에 상처를 남겼는가를 제시함으로써, 작가는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몸소 보여주고 우리 곁을 떠났다. 그러나, 선생은 영원히 우리의 곁을 떠난 것이 아니다. 더 큰 빛과 의미로 우리와, 한국문학에 하나의 지표를 던지며 영원히 동행하게 된 것이다.

화가는 그림을 통해, 음악인은 음악을 통해 예술혼을 불태울 때, 진정한 가치를 지닐 수 있고 사랑받을 자격이 있는 것처럼, 작가는 작품을 통해 자신의 진실한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그런 정상적인 방법이 아닌 다른 수단과 절차를 통해 문인으로 군림하거나, 그러기를 희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한낱 권모술수에 능한 사이비 작가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는 저마다 자기 위치에서 가야할 길이 있다. 그 길을 따라 삶을 지속하는 것은 오직 한 번의 기회밖에 주어져 있지 않은 우리 삶에서 다른 것에 견줄 수 없을 만큼 중요하고 가치 있는 일이다. 꽃이 빛깔과 향기를 통해 자신의 모습을 드러내듯, 맹수가 포효를 통해 자신의 심정을 대외에 표상하듯, 작가에게 빛깔과 향기와 포효는 오직 작품뿐이다. 그것은 그의 숨결, 생명과 같다. 우리는 그동안 지녀왔던 여러 패러다임이 뒤흔들려 머잖아 좌초되는 운명에 놓일지도 모른다. 이 말은 우리가 어디를 향해, 그를 위해 무엇을 해야 할지를 모르는 상황과 다르지 않다. 이런 시대일수록 작가의 역할이 강조된다.

우리가 과거라는 시간 속으로 복귀하자는 말이 아니다. 진로 설정을 분명히 하고, 그 일에 작가로서의 본분을 명찰하자는 것이다. 그 방법은 거리로 나가 구호를 외치거나, 식음을 전폐하고 투쟁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작품을 통해 시대적 상황과 그에 대처하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 그것이 작가가 선택해야 할 유일한 길이다.

한 작가의 숭고한 문학의 길을 되짚어보며 우리가 혼란해했던 ‘사이비’의 경계를 어느 정도 가늠할 수 있었다.

“작가는 작품으로 말하라”

이 말이 작가와 사이비 작가의 잣대가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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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윤 재 천

경기도 1932년 안성출생, 전 중앙대 교수, 상명여대 교수 등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등 저 서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 ‌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남이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7권), ‘퓨전수필을 말하다’, ‘수필아포리즘’, ‘구름 위에 지은 집’ 등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올해의 수필가상, 흑구문학상, PEN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산귀래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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