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사진 윤재천기념사업회 제공

[윤재천 수필 ㊼-2]

요즘은 인간의 생존기간이 늘고 사회 환경이 변화되어 ‘70은 청춘’이라는 말이 회자되고 있지만, 전에는 인생을 마감해야 할 때-두보(杜甫)는 희귀하다고 고희(古稀)라 하고, 공자는 세상의 일에 욕심을 버리고 마음의 흐름을 따라 살라하여, 종심(從心)이라고 했다.

인생의 축도는 계절의 순환을 전제로 한 흐름의 가시화다. 봄을 지나 생기가 충천을 거치게 되면 모든 생명체는 열기가 쇠하여 내리막을 살게 된다. 마치 여름을 지나고 나면 가을과 겨울이 밀고 들어와 모습을 드러내듯…. 이는 인위적인 힘으로 거역할 수 없고, 회춘(回春)을 간절히 원한다 해도 궤도를 벗어날 수도, 이전의 상태로 돌아갈 수도 없다. 모든 생명체는 이 질서에 순종할 수밖에 없는 숙명적 존재다.

요즘 인간사회의 어지러움을 개탄하는 소리가 많다. 절대적이라고 생각했던 일이 실제에는 한낱 기대에 지나지 않을 뿐, 이를 거역하는 사람이 기하급수로 증가하고 있다. 사람은 패러다임의 전환을 꾀함으로써 이를 수용하는 방향으로 마음을 고쳐야 한다. 이러한 상황에 이르게 된 것은 위정자의 정치력 부재와 이기심, 물질만능주의가 낳은 병폐다. 이제는 안정을 찾아 ‘할 수 없어 사는 삶이’ 아닌 ‘살고 싶어 사는 날’이 찾아와야 한다.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시대는 사계 중 어느 계절에 해당할까. 정상의 복락(福樂)을 향해 우리가 기거하고 있는 이 시대는 오르막을 오르고 있는지, 내리막에서 나락으로 내몰리고 있는지 판단이 서지 않는다. 누구나 행해야 할 도리와 질서를 무시하고 경거망동을 서슴지 않는다.

인간의 행복은 물질과 쾌락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아니며, 삶을 윤택하게 하는데 필요하다. 물질은 필요에 의해 요구되는 수단이고, 쾌락은 정신적 안정을 파괴하는 일시적 회오리바람 같은 존재다. 우리에게 주어진 생존의 기간은 아무렇게 살기에는 긴 시간이고, 전후사정을 살펴가며 챙겨 살기에는 찰나에 지나지 않는다.

봄의 위세가 넘치고 있다.

그릇의 크기에 따라 그 안에 담길 물의 양이 결정되듯, 우리가 이 계절의 용도를 어떻게 쓰느냐에 따라 삶의 질도 달라진다. 경기에 나가 싸우는 운동선수와, 전쟁에 참가해 전투를 벌이는 병사처럼 유일한 목표를 갖고 인생을 살 수는 없다. 지향점 없이 뒤척이며 사는 것은 당사자뿐 아니라, 모두에게 불행한 일이다.

불을 피워 언 몸을 녹이는 것도 추위를 이기는 방법 중의 하나고, 불씨를 만들어 놓고 땔감을 모아 그 위에 올려놓음으로써 불길을 살리는 것도 겨울을 이기는 방법 중의 하나다. 이 중 어느 방법을 선택하느냐 하는 것은 자신의 몫이다.

모든 여건이 조성된 삶만이 기대치를 충족시킬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족한 면을 열심히 채워가며 바쁘게 사는 것도 행복, 목표하는 바에 이르는 일 중의 하나다.

계절의 순환은 많은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해준다. 그 무언(無言)의 소리에 얼마나 귀 기울이고 사느냐에 따라 우리의 생활은 다른 모습으로 전개될 수 있다. 흥청거림을 접고, 차분히 자기 자신을 응시해야 할 때다.

봄에 가을꽃인 코스모스가 피어 하늘거리고, 삼짇날이 와도 제비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 것은 어떤 이유 때문일까. 우울한 봄을 맞기에 아직 우리의 혈맥은 뜨겁고 순수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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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윤 재 천

경기도 1932년 안성출생, 전 중앙대 교수, 상명여대 교수 등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등 저 서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 ‌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남이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7권), ‘퓨전수필을 말하다’, ‘수필아포리즘’, ‘구름 위에 지은 집’ 등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올해의 수필가상, 흑구문학상, PEN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산귀래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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