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글․사진 윤재천기념사업회 제공

[윤재천 수필 ㊼-1]

지상에 존재하는 생명체는 예외 없이 우주의 질서에 대응하며 살아간다.

그러지 않으면 도태될 수밖에 없다. 이러한 사실을 잘 입증해주는 예가 계절의 순환에 따른 생태계의 변화다. 추운 곳에 사는 짐승은 표피(表皮)가 두껍고 털이 많다. 우주를 지배하는 힘도 이를 근간으로 한다.

계절은 사계(四季)의 구분이 명확하게 드러나는 지역에만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구의 양 극점에도 계절은 존재하고, 적도 아래로 이 구분은 실재한다.

올해도 어김없이 봄이 오고, 모든 생명체는 겨울 동안의 긴 잠을 떨치고 일어나 활동한다. 머지않아 온갖 꽃이 산야(山野)를 온통 향기와 빛깔로 채우고, 겨우내 보이지 않던 새와 벌레가 겨울 동안 정지하던 생명현상을 펼침으로 분위기를 새롭게 한다.

인류의 생태 현상과 주기도 네 계절의 순환적 질서와 다르지 않다. 개인적 차이는 존재할 수 있으나, 모든 것은 이를 근간으로 형성된다. 행복과 불행의 채널도 예외는 아니다. 성(盛)할 때가 있으면 쇠(衰)하는 때가 있고, 어려움에 봉착하다가도 어느 순간 우연치 않은 계기로 일이 잘 풀려 처지가 개선되는 경우도 있다.

삶은 논리적인 인과관계에 의해 주도되거나, 그에 따른 결정이 아님을 경험을 통해 알 수 있다.

인생 경로를 ‘탈무드’에서는 다음과 같이 표상하고 있다.

신은 처음에 생물의 존재 기간을 30년으로 규정했다. 누구는 더 살게 하고, 덜 살게 하는 것 자체가 불평등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말과 개, 원숭이는 자신들이 살기에는 너무 길어 그 일부를 반납하겠다고 제의했다. 신은 단호히 거절했다. 당사자의 의견을 받아주기 시작하면 걷잡을 수 없는 혼란이 있을 것 같아서다. 그러나 자기에게 허락된 시간의 일부를 신 앞에 던져놓고 달아나 버렸다.

오직 인간만이 30년밖에 살 수 없는 점에 불만을 품고, 더 생존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신을 찾아가 간청했다. 이 의욕을 기특하게 여긴 신은 말과 개, 원숭이가 내던지고 간 세월을 인간에게 주며 덤으로 우주를 관리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해서 만물의 영장이 되게 했다.

그 결과에 따라 인간은 주어진 30년을 인간으로서 살아가는데 필요한 소양을 다지는데 사용했다. 공자(孔子)가 말한 입지(立志)-뜻을 세워 삶을 도모한다는 말도 이를 토대로 해석할 수 있다. 자기 몸 하나 곧추세워 일으키지 못하던 상태에서 걷고 뛰고 말하고, 타인과의 의견 차이를 조정할 수 있는 능력을 보양하는 때가 이 시기다.

나이 30 이후부터는 말이 남긴 20년 세월을 더 살게 됐다. 말이 20년의 세월을 신 앞에 내던지고 갔기 때문이다. 청, 장년기 때 바쁘게 살 수 있는 것은 남긴 세월 때문이다. 말은 달리는 것이 그 속성이다. 그러지 않으면 말은 말의 생존의 의미를 상실하게 된다. 말에게 자신이 그렇게 살아야 하고, 어떤 영화를 누릴 것이냐 하는 회의는 불필요하다. 오직 달리는 것만이 말의 본성이다.

일체의 의혹을 가질 필요가 없다하여, 40을 일러 불혹(不惑)이라고 했다.

이후, 10여 년 동안은 경륜을 바탕으로 자기 주변을 살피고 지키며 사는 기간이다. 개가 집을 지키듯 사는 세월이 이때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축적한 명예와 재산, 인연을 맺고 살아온 이웃들, 자기업적을 살펴 버릴 것은 버리고 갈무리해야 하는 때가 이 시기다. 이 시기-50대를 가리켜 지천명(知天命)이라고 했다.

나머지여생은 원숭이가 남겨놓은 세월을 살게 된다. 이때부터는 일을 새롭게 꾸미는 시기가 아닌 관전하는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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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정 윤 재 천

경기도 1932년 안성출생, 전 중앙대 교수, 상명여대 교수 등 ‌한국수필학회 회장, ‘현대수필’ 발행인, 한국문인협회 고문, 국제펜클럽한국본부 고문 등 저 서 수필문학론, 수필작품론, 현대수필작가론, 운정의 수필론 수필집 ‌ ‘구름카페’, ‘청바지와 나’, ‘어느 로맨티스트의 고백’, ‘바람은 떠남이다’, ‘윤재천 수필문학전집’(7권), ‘퓨전수필을 말하다’, ‘수필아포리즘’, ‘구름 위에 지은 집’ 등 수 상 ‌ 한국수필문학상, 노산문학상, 한국문학상, 올해의 수필가상, 흑구문학상, PEN문학상, 조경희 문학상, 산귀래문학상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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